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걸어보지 못한 길 - 로버트 프로스트

석전碩田,제임스 2024. 3. 13. 06:00

걸어보지 못한 길

 

- 로버트 프로스트(정현종 역)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 시집 <불과 얼음>(민음사 세계 시인선, 정현종 옮김, 1973.12)

 

The Road Not Taken

 

-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 월간 <아틀란틱>(1915년 8월호)

- 시집 <Moutain Interval 마운틴 인터벌>(1916)

 

* 감상 : Robert Frost(1874. 3. 26 ~ 1963. 1.29).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국민 시인으로, 네 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고전 정형시(定型詩,fixed form of verse)가 운률(韻律)을 무시하는 현대 自由詩로 바뀌고 있었지만, 프로스트는 자유시는 ‘테니스를 네트 없이 치는 것과 같다’라고 했을 정도로 끝까지 미국 고전 정형시를 고수했던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그는 딱딱한 문어체를 피하고 구수한 구어체를, 그것도 미국 고유의 구어체로, 그것도 뉴잉글랜드의 구어체를 써서 이야기하는 시, 노래하는 시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국민 시인이 되었습니다.

 

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늘 감상하는 이 시도 정형화된 운율(각운)이 있습니다. 각 연은 다섯 행(行)으로 되어 있고, 1, 3, 4 행(行)이 같은 각운(脚韻)이고, 2, 5행이 같은 각운입니다. 첫 연을 예로 들면 wood, stood, could와 both, undergrowth가 그것입니다.

 

버트 프로스트는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할 때, 계관시인으로서 취임식에 초청되어 백발을 휘날리면서 자작시를 낭독한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87세의 노(老)시인은 44세의 젊은 새 대통령을 위해 특별히 지은 축시(祝詩)와 대통령으로부터 부탁받은 자신의 시 ‘완전한 선물(The Gift Outright)’을 읊으려고 했지만, 취임식장 주변에 쌓여있던 흰 눈에 반사된 광선 때문에 글씨가 안 보여 축시 읽기는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자작시만을 암송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축시는 취임식 후에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는데, ‘시와 권력의 황금시대가 도래하였다(A golden age of poetry and power / Of which this noonday's the beginning hour)’로 끝난다고 합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상징과 은유로 표현하고 있는 시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난 것은, 정작 시인 본인은 이 시를 ‘그냥 산책하다가 끄적거렸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시에 대해서 너무도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시에 나오는 ‘길’과 ‘선택’은 인생길에서 선택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느니 지나친 분석과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해 ‘왕짜증’을 냈을 정도였다는 뒷담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시인이야 그저 끄적인 노래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가 유명해진 데에는 단순히 유명한 시인이 쓴 시이기 때문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이 어떠한가에 따라 수년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에 처음 이 시가 소개된 것은 수필가이면서 영문학자였던 피천득이 번역했던 ‘가지 않은 길’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리고 또 대학 수학능력 시험 언어영역에도 출제된 적이 있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시가 되었습니다. 그 후 피천득이 번역한 시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새롭게 번역이 시도되었는데, 그중에서 정현종 시인이 번역한 시가 시적 은유와 상징성, 그리고 원문의 여운을 비교적 잘 살려낸 듯하여 오늘은 그의 번역을 선택했습니다. 제목을 피천득이 ‘가지 않은 길’이라고 번역했다면, 정현종 시인은 ‘걸어보지 못한 길’로 번역한 것부터 다릅니다.

 

어 달 전부터 소심이를 산책시키기 위해서 아파트 주변과 단지 안을 벗어나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멀지만 진관사와 삼천사가 있는 부근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삼천사 입구에 있는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부터 진관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 ‘마실길 구간’이 최근 개발한(?) 소심이와 함께 하는 산책 코스입니다. 은행나무 군락지도 있고,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또 계곡물에도 잠시 내려갈 수 있으며 인적이 그리 많지 않은 비교적 호젓한 길이어서 이제는 거의 매일 걷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늘 가던 진관사 쪽이 아니라, 반대쪽인 백화사(북한산성 입구) 방향의 길을 선택해서 걷다가 가까운 길가에 서 있는 시 팻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오늘 감상하는 이 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지요. 너무 반가워서 영문과 우리말 번역문을 목소리를 높여 열심히 읽고 있노라니, 소심이는 옆에 있는 다른 안내판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더군요. 이 시 팻말과 함께 서 있는 또 다른 안내 표지판은 ‘산성정계(山城㝎界)’를 알리는 바위 위에 새겨진 글자였지요. 소심이 눈높이에 새겨진 글씨였습니다.

 

성정계(山城㝎界)란, 산성으로부터의 거리가 5리(里)임을 알리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인데 전문가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 글자는 조선조 숙종 때 기록된 <승정원일기>의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보아 그때 새겨진 표식으로 추정됩니다.

 

‘<인접에 민진원이 입대하여 북한산성 정계 안의 개간지를 면세해 주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 인접 시에 지돈녕 민진원이 주달한 바, 북한산성 서문 밖의 한 골짜기가 버려진 채로 있어서 도제조가 농우를 갖추어 주고 백성을 모집하여 개간하였으나 땅이 몹시 메마르고 거칠어서 수확량이 세금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하므로 농사짓고자 하는 이가 극히 적습니다. 남한산성 밖에도 또한 개간한 곳의 리 수를 정하여 세금을 면제해 주는 규정이 있으니 남북한이 마땅히 같아야 할 것입니다. 각 지방관에게 명하여 본성 별장과 더불어 직접 입회하여 5리를 한하여 정계한 후, 정계 내에 있는 곳 중 산성을 쌓은 후에 개간한 곳은 남한의 예에 따라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남한의 예에 따라 행하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28책 숙종 46년(1720) 2월 15일 일자)’

 

가던 길만 가고, 이쪽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런 귀한 사적(史蹟)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북한산 둘레길의 이 구간을 걸으면서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은 나뭇잎들이 노란색으로 변하여 떨어지는 어느 가을날,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갈래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가야 할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초가을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시인의 나이인 중년의 마흔 초반쯤이라고나 할까요. 두 길을 다 가고 싶지만 몸이 하나밖에 없으니 그럴 수도 없는 상황. 한쪽 길을 고개를 들어 멀리 보았지만 길이 굽어있어 끝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른 쪽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 다른 쪽 길도 ‘여전히 아름답기’도 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덜 걸어 다녀서 풀도 제법 자라 있고 발자국도 별로 없었기에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별난 사람이어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그 반대를 택하면서 시인은 ‘as just as fair(똑같이 아름답고)’라고 표현했습니다.

 

는 프로스트의 이 시를 읽을 때면, 늘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길도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에 이르는 문은 작고 길도 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한 구절입니다.

 

떤 모양이든 우리는 계속하여 삶의 갈림길에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그 현명한 선택도 점점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선택이 먼 훗날 행복한 추억을 더듬는 일이 될지, 아니면 한숨을 쉬면서 후회하는 일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러나 조금은 별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찾는 사람이 적은 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길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지금의 이 삶의 길은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장 소중한 길임을 깨닫는 것 말입니다. - 석전(碩田)

산성정계(山城㝎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