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벼랑의 나무 - 안상학 / 벼랑의 나무들 - 도종환

석전碩田,제임스 2024. 2. 21. 06:05

벼랑의 나무

- 안상학

숱한 봄
꽃잎 떨궈
깊이도 쟀다

하 많은 가을
마른 잎 날려
가는 곳도 알았다

머리도 풀어 헤쳤고
그 어느 손도 다 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사, 2014년 6월)

* 감상 : 안상학 시인.

1962년 6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1987년 11월의 新川’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첫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한길사, 1991)를 냈고, <안동 소주>(실천문학, 1999), <오래된 엽서>(천년의시작, 2003), <아배 생각>(애지, 2008),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 2014),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2020), 그리고 한영대역 시선집 <안상학 시선>(아시아, 2018)과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창비, 2018), 인물 평전 <권종대-통일 걷이를 꿈꾼 농투성이>(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서화집 <시의 꽃말을 읽다>(실천문학사, 2015)를 펴냈습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권정생 사후에 설립된 어린이 문화재단의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산문학대상(2015), 권정생창작기금(2016), 동시마중 작품상(2018), 백석문학상(2021), 5.18문학상(2021)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슷한 연배이면서 유교적 전통과 양반 문화를 강조하는 경북 안동 출신의, 같은 보리 문동(文童, 경상도 발음으로 ‘문디’)인 안상학 시인은 4년 전, 그의 시 ‘아배 생각’과 ‘얼굴’을 읽으면서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를 부르는 경상도 방언 ‘아배’를 아는, 평소 애써 꾸민 흔적은 없지만 무게와 깊은 울림을 주는 시를 쓰는 토속적인 시인”이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https://jamesbae50.tistory.com/13410916 )

칠 전, 평소 연락이 별로 없이 지내던 한 지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운전 중이라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답한 후 끊었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만 하루가 지난 후에야 생각이 나서 전화했더니, 가정사를 상담하고 싶어서 믿을 수 있는 제가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는 것입니다. 계획에 없던 전화 상담이 시작되었는데, 긴 시간 그가 풀어 놓은 사연은 그동안 아내와 심각한 갈등을 겪다가 돌파구가 없어 몇 번이나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통화를 끝내면서 안상학 시인의 이 시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절박한 심정에서, 누군가에게 그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을 노래한 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는 위기의 순간에 있는 사람을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에 비유하여 감정 이입(感情移入)을 시켜 너무도 실감 나게 은유적으로 그려낸 시입니다. 벼랑 위에 서 있는 나무에 봄가을 꽃잎과 낙엽이 피고 지는 자연현상이 시인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았나 봅니다. ‘벼랑’이라는 시어 자체가 그런 시적 은유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모종의 결단을 앞두고 나무는 숱한 세월, 나름대로 엄청난 갈등과 고민을 했다고 노래합니다. ‘벼랑’이라는 말에,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위기에 처한 절박한 순간을 상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절박한 순간은 ‘숱한 봄 / 꽃잎 떨궈 길이도 쟀다// 하 많은 가을 / 마른 잎 날려/ 가는 곳도 알았다 // 머리도 풀어 헤쳤고 / 그 어느 손도 다 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고,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러나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딱 한 줄 문장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연(聯)입니다. 시인은 절박한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에게, 아니 헤어날 길이 없이 사방이 꽉 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그가 신고 있는 신발’로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 그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 모든 게 다 끝이라 생각하지만, 아직도 신고 있는 신발이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지탱하게 하는 마지막 희망이요 소망임을 노래합니다. 벼랑의 깊이도, 또 가는 곳도 이미 숱하게 확인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은 내가 확인한 그런 지식보다 어쩌면 훨씬 더 깊고 지켜낼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확인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자기 몸에 붙어 있는 ‘신발’에 의해서 지금까지 벼랑을 견뎌 온 나약한 존재이며, 바로 그 신발 덕분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버텨내고 있다고 호소하는 듯합니다.

살 위기 상담에서 밝혀진 것은, 마지막 결단을 하기 전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의사가 있음을 누군가에게 암시하는 힌트, 신호를 반드시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즉, 오늘 시에서 표현된 것처럼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만 벗으면 이제 끝인 그 순간, 내가 이 신발을 벗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는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신호를 세심하게 간파하고, 그가 그런 결단을 하지 못하도록 ‘마지막 신고 있는 신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지막을 지탱하게 해 주는 역할, 그것은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경청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곁에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발을 벗지 않고 끝까지 신고 있기만 하면, 그 벼랑의 나무도 한 폭의 멋진 산수화의 일부가 되어 모두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다는 격려와 응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종환 시인은 ‘벼랑의 나무들’이라는 비슷한 제목의 시에서, 나무가 서 있는 ‘벼랑’이라는 자리를 은유적으로 멋지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를 잠시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벼랑의 나무들

- 도종환

어둠이 온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잠들지 않습니다
깨어 기다려라 그 말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눈발이 살갗을 찢어도 우리는 무서워 떨지 않습니다
바람에 가지를 잃어도 뿌리까지 빼앗기진 않습니다
빗줄기 속에서도 우리는 새 몇 마리를 쉬게 합니다

새벽이 온다 해도 우리는 들떠 소리치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이 온몸을 축복하며 내려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에 오늘도
이렇게 있습니다

- 시집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실천문학사, 1988)

습니다. 도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가 ‘벼랑’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자리에 ‘아침 햇살이 온몸을 축복하며 내려도 교만하지 않’고, ‘어둠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 ‘어둠 속에서도’ 결코 ‘잠들지 않’고 ‘깨어 기다’리는 자세, 혹독한 추위와 캄캄한 밤이 지나 이제 ‘새벽이 온다 해도’ ‘들떠 소리치’며 경거망동하지 않고, 묵묵히 그저 ‘오늘도 이렇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벼랑에 선 자의 노래라는 것입니다.

쪼록, 그 지인이 이런 시련의 시간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고 ‘빗줄기 속에서도’ ‘새 몇 마리를 쉬게’하는 근사한 벼랑 위에 선, 상처 입은 위로자로 우뚝 설 수 있길 응원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