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늪의 내간체를 얻다 / 서랍을 가지게 되었다 - 송재학

석전碩田,제임스 2024. 1. 24. 07:06

늪의 내간체(內簡體)를 얻다
                              
- 송재학

너가 인편으로 붓틴 보자(褓子)에는 늪의 새녘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ᄆᆞᄃᆞᆸ을 플자 믈 우에 누웠던 항라(亢羅) 하ᄂᆞᆯ도 한 웅큼,  되새 떼들이 방금 ᄇᆞᆲ고간 발자곡도 구석에 꼭두서니로 염색되어 잇다 수면의 믈거울을 걷어낸 보자(褓子) 솝은 흰 낟달이 아니라도 문자향이더라 ᄇᆞ람을 떠내자 수생의 초록이 눈엽처럼 하늘거렸네 보자(褓子)와 매ᄃᆞᆸ은 초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머구리밥 ᄉᆞ이 너 과두체 내간(內簡)을 챙겼지 도근도근 매ᄃᆞᆸ도 안감도 대되 운문보(雲紋褓) 몇 점 구ᄅᆞᆷ에 마ᄋᆞᆷ 적었구나 ᄒᆞᆫ 소솜에 유금(游禽)이 적신 믈방올들 내 손등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만ᄒᆞᆫ 고요의 눈띠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보자(褓子)는 다시 보낸다 아아 겨울 늪을 보자(褓子)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너무 차겠지 향념(向念)



* 언니가 동생에게 보내는 내간체의 느낌을 위해 본문에 남광우의 <교학고어사전>(교학사, 1997)을 참고로 한 고어 및 순우리말과 한자말 등을 취사했다.

** 현대어 본문은 다음과 같다
너가 인편에 부친 보자기에는 늪의 동쪽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물 위에 누웠던 항라 하늘도 한 움큼, 되새 떼들이 방금 밟고 간 발자국도 구석에 꼭두서니로 염색되어 있다 수면의 물거울을 걷어낸 보자기 속은 흰 낮달이 아니라도 문자향이더라 바람을 떠내자 수생의 초록이 새순처럼 하늘거렸네 보자기와 매듭은 초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개구리밥 사이 너 과두체 내간을 챙겼지 도근도근 매듭도 안감도 모두 운문보라 몇 점 구름에 마음 적었구나 삽시간에 유금이 적신 물방울들 내 손등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 많은 고요의 눈맵시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보자기는 다시 보낸다 아아 겨울 늪을 보자기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얼음이 너무 차겠지 향념

- 시집 < 내간체를 얻다>(문학동네, 2011)

* 감상 : 송재학 시인.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포항과 금호강 인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1982년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낮에는 ‘송재학 미(美)치과의원’을 운영하는 치과의사로, 밤에는 글을 쓰는 시인으로 사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였으며, 198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시 ‘어두운 날짜를 스쳐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얼음시집>(문학과지성, 1998), <살레시오네 집>(세계사, 1992), <푸른빛과 싸우다>(문학과지성, 1994),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민음사, 1997), <기억들>(세계사, 2001), <진흙 얼굴>(문예중앙, 2011), <내간체를 얻다>(문학동네, 2011), <날짜들>(서정시학, 2013), <검은색>(문학과지성, 2015), <슬프다 풀 끗혜 이슬>(문학과지성, 2019),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문학동네, 2022)과 산문집 <풍경의 비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삶과 꿈의 길, 실크로드>(아침책상, 2013) 등이 있습니다.

달진 문학상(1994), 대구문학상(1998), 소월시문학상(2010), 상화 시인상(2011), 금복 문화상문학부문(2011), 이상 시문학상(2012), 편운문학상(2014), 전봉건 문학상(2016), 동리 목월문학상(2017), 송수권시문학상(2020), 진주 형평문학상(2022), 황순원 시인상(2022) 등을 수상했습니다.

재학의 시는 대체로 어렵습니다. 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느낌이 오는 건 아니지만 그의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지난해 8월, 그의 친필 사인이 있는 신간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을 구입해 놓고, 함께 감상할 시 한 편을 골라야 하는데 쉽지 않아 이렇게 해를 넘기고야 말았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시인이 어느 일간 신문과 했던 인터뷰 기사를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십여 년 전에 처음 창녕 우포 늪에 갔을 때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원시성이 대단했거든요. 지금은 길들이 정비되어 느낌이 다 사라져 버렸는데, 처음에 갔을 때는 허리까지 젖어서 들어갔어요. 그 늪이 원래는 거대한 호수였는데, 호수가 육지가 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게 늪이래요. 조그만 쪽배를 빌려 타고 들어갔었어요. 한 달 내내 일요일마다 갔었어요. 그때 늪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썼는데 이 시는 그중의 하나입니다.

늪의 풍경에 대해 표현을 하고 싶은데, 형식적으로 그냥 평범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요.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처음부터 편지 형식을 생각했었는데, 나름대로 이야기 서사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늪 근처에 살던 자매가 둘 다 시집을 갔는데, 동생은 늪 근처에 그대로 살고 있고 언니는 먼 데로 간 거예요. 동생이 언니한테 선물을 보내 줬는데 늪에 대한 풍경이 있었고, 그에 대한 답신으로 언니가 보낸 거라는 서사를 만들었어요. 여인네들의 속삭임이야말로 늪의 내밀한 것과 통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내간체라는 개념이 왔고, 자연스럽게 17~8세기 근대적 자아가 눈뜰 때의 여성들을 떠올린 것이지요."

런 시인의 설명을 들으니 오늘 읽었던 시가 금방 다가오는지요? 그래도 여전히 어렵지요. 그렇지만, 그가 향가체 시어와 한자를 섞어 내밀한 여성들만의 섬세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 의도는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자매가 주고받는 정감어린 편지글 속에 오가는 내밀한 혈육의 정(情),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마음과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정(情)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눈이 내려 하얗게 눈 덮인 겨울 우포늪의 광활한 풍경이 사진처럼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하는 시입니다.

시인의 시작(詩作) 인생은 고교 시절 우연히 접한 향가(鄕歌)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향가 해제>. '정읍사(井邑詞)'와 향가, 고려가요의 원문과 해설이 함께 수록된 참고서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그 책은 시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향가를 통해서 다가온 말의 아름다움과 수사(修辭)의 매력, 그리고 음악의 악보같이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느껴지는 주술성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 향가와 그 문체 및 수사법은 송재학 시인의 ‘밑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이해하는 키 워드(Key word)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0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심사위원들은 그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특유의 언어 감각과 조사법(措辭法)을 바탕으로 시적 진술의 이완과 긴장을 동시에 포괄하는 산문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수사(修辭)에 대한 믿음을 갖고 모든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도’를 열한 번째 시집을 상재(上梓)한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정진해 오고 있습니다. 송재학 시인하면 많은 이들이 특유의 언어 감각과 조사법(措辭法)을 떠올립니다. 우리말 사전에 보면 ‘조사법’이란 ‘순수한 우리말 사용과 그 운율을 의식하여 시어를 선택하고 구사하는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송 시인은 ‘사물 속으로 들어가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사람과 사물의 본질 속으로 더 깊숙이 내려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이 지금의 내 시 스타일이 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10년 전, 위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시인이 자신의 고통과 몸을 조사법으로 깊이 들여다본 시 한 편을 더 감상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내면서, 남들과는 다른 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꾸준히 성숙시켜 온 시인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길 응원합니다. - 석전(碩田)

서랍을 가지게 되었다
- 위(胃)를 이야기하자

- 송재학

나는 어제 겨우 밥을 먹었다
우걱우걱 대충 씹어 꿀떡 삼킨 것이 아니라 씹고 씹어도 내 얇은 위벽은 쉬이 예민해졌다 그러므로 밥 이야기는 위에 대한 정념이다

내 몸은 아직 발열 때문에 서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내 위를 지하실쯤이라고 생각했다
통증이 번지는 것은 그때,
모든 입김은 위의 유문을 비추는 조명과 등을 맞대고 있다
나는 몸을 구부려
불면이 통과하는 위벽의 지하에 누웠다

빌로트 씨*의 조언으로 내 위의 대부분을 떼어내고 십이장을 연결했을 때 잘라낸 위 대신 물컹한 서랍이라도 필요했다 정갈한 하드디스크 같은 서랍! 숨기거나 저장할 것이 남았다면 유령과 육신이 구별되리라

아침에 먹은 것을 저녁에 토하면서 헐렁한 위의 속삭임 안에 누웠다 나는 점점 힘들어지든가 아니면

* 오스트리아의 외과 의사. 복부 수술의 창시자로 위의 유문 절제를 최초로 성공했다.

-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문학과지성,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