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아니, 정확하게 질문하자면 추석 명절은 잘 보내고 계신지요?
주변에는 전통적인 명절 나기 방식으로 시골 고향에 다녀오느라 내려가는데 10시간, 올라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투덜대는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모처럼의 긴 연휴를 이용하여 가족 단위로 국내 또는 해외로 나들이를 떠난 친구들도 꽤 있더군요. 어떻게 보내든 명절 풍속도가 예전같지 않게 많이 다라진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조용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명절 전에는, 늘 하던대로 LA 갈비와 육개장을 넉넉히 준비하고 우리가 먹을 전을 부치는 일, 그리고 명절에 주고 받을 조그만 증정용 선물을 미리 구매해두는 일 등으로 조금 바쁘지만, 명절 바로 전날과 당일은 조용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올 추석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명절 전 날 도착하자마자 준비해 둔 음식으로 푸짐한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우리 부부는 곧바로 쌍문동에 있는 큰집을 방문했습니다. 집안 장조카의 집인데, 아직도 어머니 같은 형수님이 살아계셔서 인사드리는 것이지요. 커피 한 잔 하며 선물도 주고 받고 또 안부도 서로 나누며 즐거운 대화를 하는 시간이지요.
이번엔 둘째 질부님이 우리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재미나게 연출할 수 있는 앱(PhotoFunia)을 소개하느라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명절 당일이 아니라, 하루 전에 이런 일을 하니 한결 여유로와서 좋습니다. 아들이 결혼, 며느리가 온 4년 전부터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명절 바로 전 날 밤에는 온 식구가 거실에 둘러 앉아 '명화 한 편 보기'를 했습니다. 이번에 함께 감상했던 영화는 이병헌 주연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영화. 생존을 위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잃고 짐승처럼 변해가는지 실감나게 그린 수작(秀作)의 영화였습니다. 이기적 본성의 인간이 얼마나 더 악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결국은 공멸(共滅)하는, 그 적나라한 현실을 불편하게 지켜보며 느끼는 게 참 많았습니다.
추석 당일은 늦은 기상, 그리고 식탁에 둘러 앉아 햅쌀밥으로 지은 한 그릇의 밥과 국으로 여유있게 아침을 먹으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지요.
이번 추석의 가장 큰 선물은, 며느리가 결혼 5년 만에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 옆에 앉은 아내가 기뻐하면서 눈물까지 흘린 모습이 제게는 큰 감동이었지요. 그동안 서로 말없이 걱정하면서 참 간절히 기다려온 소식이었거든요. 내년 추석 땐 식탁에 둘러 앉을 식구가 하나 더 늘어나겠지요. ㅎㅎ
오전 11시, 처갓집으로 떠나는 아들 며느리에게 각별한 몸조심을 부탁하고 작별하고나니, 마치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여 각자 가정을 이루었으니, 우리 어른 형제들이 함께 모이는 날은 '명절 다음 날'이 됩니다. 부모님이 계실 땐 명절 전날과 당일에 모였지만 이제는 순위에서 밀린 것이지요. 이번 추석엔 둘째 누나네가 한 달 전 이사를 했기 때문에, 집들이 겸해서 김포에서 만났습니다. 서로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운 서울과 그 근교라는 사실이 이런 명절이면 더욱 감사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명절 선물로 올핸 '강화햅쌀'로 준비해봤는데,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마침 쌀이 떨어졌는데 너무 좋다"는 반응에서부터, "올해 햅쌀맛을 보지 못했는데 감사하다"는 반응..싫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이래저래 올 추석 명절은 '기쁜 소식'과 더불어 참으로 풍성한 한가위였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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