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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석전碩田,제임스 2019. 8. 2. 14:55

제는 퇴근 후 광화문 씨네 큐브에서 개봉작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곧바로 진행된 요즘 핫하게 잘 나가고 있는 작가 김영하씨와 <씨네 21> 장영엽 기자가 나눈 씨네 토크까지.

 

화의 원제는 ‘Everybody knows’인데 한글 제목으로 <누구나 아는 비밀>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란 출신 감독인 아쉬가르 파라디의 최신 작품입니다. 지난 번 봉준호 감독이 대한민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탄 칸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모른 채 영화 감상을 하면 부분적인 이해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날은 감상 후에 씨네 토크가 이어져, 그 대화들을 경청하는 가운데 영화를 훨씬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란이라는 변방 국가 출신으로 여러 화제작을 제작하고 있는 유능한 감독에 대한 정보, 그리고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과 배우 캐스팅 등 비하인드 스토리 정보, 또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유명 국제 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가 뭔지에 대한 폭넓은 대화들은 한 편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토크 시간을 마친 후에는 영화를 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레네)과 아들을 데리고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고향 스페인을 찾은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떠들썩한 결혼식 파티를 즐기던 중 갑자기 정전이 되고 사랑하는 딸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연이어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며 경찰에 알리면 죽이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은 라우라와 그 녀의 가족들은 즐거운 찬지 분위기에서 갑자기 아수라장 같은 상황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오랜 친구이자 과거 연인이었던 파코(하비에르 바르뎀)까지 딸을 찾기 위해 나섭니다.

 

찰에 신고하지 않고 은밀한 중에 범인들과 협상하면서 딸을 무사히 구해내야 하는 절대 절명의 상황이 이 영화를 진행시켜 나가는 가장 굵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정황으로 봐서 가족을 잘 아는 주변인들 중 누군가가 연관이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의심은 점점 커져가고,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 평범한 부부 사이에서 조차도 그동안 말하지 않고 지내왔던 비밀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라우라와 가족 모두는 미묘한 긴장감 속에 서로를 의심하고 그동안 숨겨온 과거의 비밀들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됩니다.

 

장 감독 답게, 아쉬가르 파라디는 탄탄한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 능력으로 영화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특히, 이란 국내에서만 제작했던 기존의 영화들과는 달리, 로케 현장을 스페인 현지에서 완벽하게 소화하였고, 또 배우들도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영화의 각본에 따라 그에 맞는 국적의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하더군요.

 

금부터는 스포일링 가능성이 다분한 내용이지만, 글을 써 내려가겠습니다.

 

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씨네 토크를 통해서 나눈 대화 내용은, 우리 인간이 오래 전에 저질렀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몇 십년이 지난 후까지 그것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하는가 하는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가 거론되었습니다.

 

째는, 생물학적으로 친부(親父)가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한 공간 안에서 가족으로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온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째는,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실(Fact)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변화시키고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Value)가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마을에 살았던 라우라와 파코는 서로 사랑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파코는 부잣집 딸인 라우라와는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그 집안 하인의 아들이었습니다. 결국, 둘은 사랑했지만 라우라는 멀리 외국(아르헨티나)에 사는 부자 청년과 결혼하여 먼 타국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졸지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파코는 악착같이 일을 해서, 라우라 가족이 경영하던 포도 농장 땅을 사들이고 또 착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와이너리가 있는 근사한 포도 농장의 어엿한 농장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대조적으로 라우라의 가족(아버지와 언니, 그리고 형부 등)은 가세가 점점 기울어 이제는 마을에서 조그만 호텔업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해 가는 몰락해 가는, 가족 신세가 되고 맙니다.

 

화에 등장하는 화려한 스페인의 시골 마을 성당 결혼식 광경도, 어쩌면 라우라 가족이 과거의 화려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마련한 행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누구나 다 아는 첫 번째 비밀인 셈이지요.  손녀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에 놀란 할아버지가 술을 먹고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이런 사실들이 하나 둘 드러납니다.

 

혼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라우라는, 파코에게 헐값에 농장을 팔아 멀리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은 그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일어났습니다. 결혼 3년 후 다시 고향 친정에 혼자 다니러 온 라우라와 파코는 재회하고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밤, 떠나는 옛 연인 라우라를 데려다 주기 위해서 파코와 함께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나눈 한여름 밤의 꿈같은 정사 때, 첫 딸이 임신됩니다. 물론 이 사실은 라우라와 그녀의 남편인 안레한드로(리카도 다린)만 아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습니다. 파코 조차도 상상을 하지 못했던 사실이니까요.

 

러나 점점 서로가 의심하는 상황으로 사건이 진행되면서 라우라 가족들이 파코에게 갖고 있는 생각, 즉 과거에 농장을 파코가 헐값에 구입하기 위해 사기를 쳤다는 생각은 그동안 파코 부부만 몰랐고 라우라 가족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물학적으로 라우라의 첫째 딸이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파코는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서 결국 그의 아내 베아(바라라 레니)와 갈등이 일어납니다. 평범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 온 두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면서, 생물학적 가족 관계가 정말로 이렇게도 중요한 걸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영화 중, 베아가 했던 대사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린 비밀이 없는 줄 알았어!”

 

네 토크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인 아쉬가르 파라디가 관심을 보인 것은 보이지 않는 가치’ ‘보이지 않는 믿음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16년 전, 라우라가 고향을 다녀 온 후 임신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남편 알레한드로는 거의 폐인이다시피 매일 술에, 도박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생 막장을 헤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아내가 자기가 임신한 아이는 당신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왔고 헤어지자고까지 선언했을 때, 그에게는 삶이 끝나는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님을 강조하면서 라우라를 굳게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잡기 위해서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결단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에게 딸 이레네(카를라 캄프라)는 자신을 다시 살린 '하나님이 보내 준 선물'이었습니다. 생물학전인 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가진 딸이 된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다시 살린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 알레한드로와 파코가 직접 대화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둘은,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이어갑니다.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중에 진행되는 이 둘의 대화는 자칫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 때문에 간과될 수도 있겠지만, 이 장면을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줍니다. 파코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가치와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의 세계로 눈을 뜨는 변곡점이 되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리고, 이것은 라우라의 딸을 납치하는 사건을 꾸민 범인은 결국 조카(언니의 딸)로 드러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라우라의 언니 부부는 나름, 가족의 내밀한 비밀들을 잘 지켜 왔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가령, 결혼을 해서 먼 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 라우라가 젊은 시절 자기 집 농장에서 일하던 하인의 아들 파코와 사랑을 나눈 연인 사이였으며, 어쩌면 첫 째 딸도 현재의 남편 딸이 아니라 파코의 딸이라는 사실 등을 알고 있었지만 비밀을 잘 간직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중에 이미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그 사실을 이용하여, 이모의 딸(이레네)을 납치하면 돈 많은 이모부 돈이든 아니면 생부인 파코의 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으니까요. 할아버지를 포함한 부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모습 속에서 그 생각과 가치관이 이미 그 자녀들에게까지 전달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뭔가 무겁게 전달되어지는 메시지입니다. 완벽한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비밀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반드시 전달되고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족 안에서 일어나는 막장극 같은 소재를 가지고, 문화와 종교, 국가와 인종을 넘어선 보편적인 인간의 근본 문제를 철학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수작(秀作)의 영화였습니다. 역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었습니다. 그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 석전(碩田)

 

영화 : <누구나 아는 비밀>(원제 : Everybody knows)

러닝 타임 : 133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감독 : 아쉬가르 파라디

주연 :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