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곳 블로그에 소개한 박선희 시인의 <스친다는 것> 시를 읽고 지인 한 분이 보내 온 댓글입니다. “무덤덤 깊은 맛이 쉽겠나요. ‘그 사람 진국이다’ 해버리면 지루하다는 말과도 상통하고, 예리한 사람은 아프게 하고~~~”
그런데 이 댓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런 물음이 뜬금없이 떠 올랐습니다. ‘그 사람 오지랖이 넓다’라고 하면 좋은 말일까 하는 물음 말입니다. 오늘 날과 같은 기계 문명 시대가 아닌, 인정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참 괜찮은 인간상이었을 듯 싶은데 현대 사회에서는 그리 괜찮은 사람으로 취급받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저 내 할 도리만 잘 하고 내 영역 안에서 주어 진 일만 잘하고 다른 곳이나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 삶이 최고의 삶입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된 것이지요.
이런 화두(話頭)를 던지는 영화 한 편을 씨네 큐브에서 감상했습니다. 지난 달 27일에 개봉된 덴마크 영화, <The guilty, 2018>였습니다.
경찰 긴급 상황실에 근무하는 주인공이 하룻밤에 겪는 이야기를 다룬, 그리고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도 상황실 안에 근무하는 동료 경찰관들이 모두 다일 정도로 너무도 심플한 구조의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상황과 모습, 혹은 배경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했을 때 치명적인 오류가 생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이 생각하는 선이 실제로는 독단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로 이 사회를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가 하는 것이 곧 정답이고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일 뿐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심플한 영화의 구조에서, 결국 위에 언급한 의문문들이 생길 만 하도록 극적인 반전으로 관객을 충분히 긴장하게 만들고 재미를 주고 있지만 이 영화가 단지 그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처럼 행동하면 오지랖이 넓다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는 못들을 텐데’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사들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이거 자네에게 정식으로 배당된 업무야?’
‘근무 중에는 사적인 전화는 받지 말라고 했잖아요’
‘근무 시간이 끝났으니 퇴근이나 해’
‘다음 근무조가 왔어, 이제 그만 하지 그래’
그리고, 이와 더불어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영혼 없는 표정과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반응들과 자신이 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면서 몰입되어 멍해지기까지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대비되는 장면은 롱 테이크로 잡아주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 영화 전체를 차지했던 ‘긴급상황실’ 안 쪽의 칙칙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문 하나를 두고 바깥 밝은 곳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주인공을 오래 찍은 정지 화면과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해서 문을 박 차고 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감독은 영화의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The guilty일까를 묻는 듯 합니다. 오지랖 넓게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다가 정당방위가 되었든, 아니면 고의가 아니었든 사고를 친 게 나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 할 일만 영혼없는 자세로 딱 끝내고 퇴근해 버리는 사람들이 나쁜 것일까?
30년 전에, 감상했지만 장면이 너무도 강렬해서 ‘guilty’라는 영어 단어만 나오면 그 장면이 생각나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깊은 밤 깊은 곳에>로 번역된 제목의 영화, <the other side of midnight>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Chatherin, Innocent or guilty?’ - 석전(碩田)
'문화산책-독후감·책·영화·논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0) | 2019.08.02 |
---|---|
[영화] 욥기 강해 영화 <교회 오빠> (0) | 2019.06.11 |
<극한 직업>, 친구의 목회 칼럼을 읽으며... (0) | 2019.02.22 |
[찬양]사랑하는 자들아..테너 박성열 (0) | 2019.02.08 |
[영화]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Back to Burgundy) (0) | 2018.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