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나이 쉰이면 모두가 다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삶의 치열한 전쟁터를 지나서 이제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관문인 오십이 되면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으로서, 상대적으로 풍성해 진 감수성과 늘어난 경험으로 인해 인생을 바라보는 여유와 안목이 달라진다는 뜻일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가끔 교보 문고에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가면 어느새 시집 코너 서가(書架)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는 나에게 어려운 문학 쟝르입니다. '어쩌면 이런 감수성을 가지고 이런 멋진 언어로 표현해냈을까' 감탄하게 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시는 어린 아이에게 밥 먹이는 연습을 시키는 엄마가 하는 것처럼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주듯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무슨 말인지 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이런 역할을 하는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역 일간 신문(대구일보)에 수년 동안 시 컬럼을 쓰면서 알음알음으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이제는 1천여 편이 넘는 그 컬럼들 중에서 몇 개를 모아 책을 두 권이나 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인입니다.
권순진 시인.
사실 저도 이 분을 직접 만난 일도 없고 또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잘 알지 못하지만, 몇 해 전 우연히 그가 쓴 시 감상 단상 한 편을 읽은 후, 그의 블로그를 찾아 친구 맺기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 후 그가 쓴 시 컬럼이랄까, 시 일기(단상)들을 읽으면서 그가 소개하는 시보다 그의 글이 더 시 답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를 알게 되었고, 또 그의 애독자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시를 골라내는 안목도 안목이려니와 시사적인 내용을 적절하게 곁들인 그의 단상의 글들은 너무도 공감이 가는 글들입니다.
그가 소개하는 시들은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도 있지만 그리 지명도가 높지 않은 시인들의 작품도 많습니다. 그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 독자들에게 제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입니다. 그래서 익히 알려진 유명 시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인들의 작품에도 그런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라고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균형 있게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좋은 시' 보급 운동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처음 일간 신문 연재를 했던 결과가 오늘날의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느 시인의 시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그가 쓴 짧은 단상은 또 다른 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다가오는 글입니다.
씨팔!/ 배한봉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 시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문학의 전당, 2006)
......................................................................................................................................
‘우리 집엔 강아지가 3마리가 있어요.’와 ‘우리 집은 3층이에요.’라고 할 때의 수를 읽는 방법은 다르다. 각각 ‘세 마리’와 ‘삼 층’이라고 해야 옳은데, 초등 1학년에겐 이 개념의 구분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영어에서도 기수와 서수가 있듯이 우리도 수를 읽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영어의 경우 기수는 기록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서수는 순서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말하자면 기수는 원투쓰리이고 서수는 first second third...로 나간다. 하지만 우리의 일 이 삼으로 셈하는 것과 하나 둘 셋으로 읽는 것은 그 방법이 영어와는 좀 다르다.
이 두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관행과 일정한 상황 원칙에 따라 달리 사용된다. ‘떡집은 1층, 학원은 2층’처럼 차례와 번호를 나타내거나 길이 무게 등의 측정단위가 붙은 수는 ‘일 이 삼’으로 읽고, ‘인절미 5개 주세요.’와 같이 개수와 횟수를 나타낼 때는 ‘하나 둘 셋’으로 읽는다. 그런데 딱 부러진 원칙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시간을 읽을 때 ‘일곱 시 다섯 분’하면 틀린 표현이 되고 ‘일곱 시 오 분’ 해야 옳다. 시를 읽을 때와 분초를 읽을 때의 기준이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테이블 넘버를 적어놓은 식당에서 종업원이 다른 테이블은 다 십 일번, 십 이번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18번 테이블은 열여덟 번이라고 호명한다. 여기에 무슨 구멍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이런 지경이니 초등 1학년 아이가 <씨8>을 ‘씨팔’이라 읽었다 해서 그리 잘 못되고 우스운 일인가. 굳이 하자를 들먹이자면 저 ‘씨팔’을 그‘씨팔’로 듣고 상상하고 키득거리는 무리들의 관념 아닌가. 여기서 그 ‘씨팔’의 어원까지 들추어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처녀 담임선생님이 순간 몹시 당황했던 것은 사전에도 없는 발칙한 단어를 상상했던 탓이다.
시인마저도 재밌어하고 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이런 시도 써진 것 아닌가. 요즘은 온갖 외래어와 축약어, 파생어와 은어들이 뒤섞여 현란하게 사용되고 있어 발음만 듣고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의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비일비재하다. 79년도 직장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막 여상을 나온 여직원이 한명 배속되었다. 착하기로 소문난 대리가 신문을 보다가 “아니 사람이 타고난 대로 살면 되지 꼭 ‘이쁜이수술’까지 해야 돼?” “안 그래 미스 송? 미스 송은 예뻐서 이런 고민할 일은 없겠네!”
신문광고를 보고 한 마디 한 것인데, 둘레 사람들은 모두 킥킥거리며 웃고, 그 미스 송도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도 그 박 대리의 어안이 벙벙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치인의 흥망성쇠는 말 속에 있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왔다. ‘꼬리 자르기’는 뭐고 ‘머리 자르기‘는 또 무언가. 이 말을 한 사람의 잘못인지, 이 말에 발끈한 사람의 잘못인지도 잘 가늠되지 않는다. 병채만이 ‘세상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칠’ 자격이 있고, 그걸 욕으로 알아듣는 자 모두 ‘씨팔! 씨팔!’소리를 들어도 싸다.<권순진>
'문화산책-독후감·책·영화·논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한나 아렌트 (0) | 2017.09.12 |
---|---|
[신문기고 글]통도사, 없음의 미학 (0) | 2017.08.12 |
[영화] 노무현입니다 (0) | 2017.06.06 |
[영화] <오두막> 개봉.. 원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0) | 2017.04.26 |
[영화]사일런스 (0) | 2017.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