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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나 아렌트

석전碩田,제임스 2017. 9. 12. 18:09

근 어느 지인의 추천으로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화의 제목은 <한나 아렌트>. 한 사람 정치철학자 이름을 딴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녀가 주장했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그 배경을 다루는, 조용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유대인으로서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나 1975년 향년 69세로 타계하기까지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프린스턴대학, 시카고 대학 등에서 학자로, 교수로 활약한 정치 철학자입니다. 그녀는 학자로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문제,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종교의 문제, 그리고 우리 인간의 근본악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은 사유를 했던 실천 철학자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주목하는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초반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해 뉴욕타임즈(NYT)’5회에 걸쳐 연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하러 갑니다.

 

러나, 재판을 참관하면서 한나 아렌트는 크게 실망하고 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정당화 하는 주장을 하거나 자기는 범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법(당시 총통의 말은 법이었으므로 그 법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을 철저하게 지켰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장면을 보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맙니다. 거대 악의 주범은 무엇인가 잔혹성이 도사리고 있을 것을 기대하고 참관했는데,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주장을 하는 '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고 철학자답게 이 재판 참관기를 NYT에 기고하기 위해서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담배를 피우며 번민과 사색에 빠진 한나 아렌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롱테이크 장면을 많이 할애합니다. 카메라는 한나가 혼자 생각에 몰두해 있는 영민한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 갑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 대사없이 고뇌하는 한나의 오랜 침묵은 내레이션이 없음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한나의 생각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또 젊은 시절, 강의실에서 하이데거라는 대 철학자의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 ‘사유’, ‘사색의 힘에 대해 매료되었던 일화를 생각나게 하는 에피소드 장면도 삽입, 이 영화의 주제가 바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생기는 것’(뉴욕 타임즈의 한나 아렌트의 기사 제목 중)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을 영화는 과장없이 차분한 연출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나치 당시, 400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동족 유대인이 죽었던 이유는, 생각없이 법에 충성했던 평범한 나치 전범들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기인하기는 하지만, 아울러 당시 유대인 중간 지도자들의 생각없는 행동도 한 몫을 했다는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녀의 이러한 의견은 결국 가족, 친구, 유대계 커뮤니티 등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것과 같은 공분을 사면서 사회적인 반감과 심지어는 살해 위협 등 극심한 위기를 맞지만, 한 철학자의 굳은 신념과 사유에 대한 삶의 태도는 지식인이라면 아무리 다수가 옳다고 주장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바로 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홀로코스트, 그리고 나찌에 대한 반감은 어쩌면 또다른 전체주의 현상임을 영화는 은근히 경고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영화를 보고 나면, 아무 생각없이 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갑자기 11초가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로, 생각없는 행동을 내가 하고는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추석 긴 연휴 기간 동안 한번 감상해 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