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독후감·책·영화·논평

[영화] 노무현입니다

석전碩田,제임스 2017. 6. 6. 21:59

현충일 공휴일 오후, 아내와 함께 가까운 이대 캠퍼스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를 찾아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감상했습니다. 영화라기보다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국민이 제대로 정치에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과정을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과 그의 생각과 뜻에 동조하는 열렬한 국민들을 중심으로 실현해 가는 과정을 엮은 다큐멘터리 영상 자료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때문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아내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이 달라 진 듯 했습니다. 아예 손수건을 꺼내서 훌쩍이는 나와는 달랐지만, 여러 차례 숙연해지는 모습을 보였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엔 그의 최후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인간 노무현과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아내를 데려가 함께 본 것이 잘 된 결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오자마자, 책장에 꽂혀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 때 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돌베게 , 유시민 정리)를 꺼내서, 마지막 그의 심경을 피력한 페이지를 펼쳐서 다시 정독했습니다. 마지막에 그가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공감하는 마음으로 더 이해하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은 이 즈음에,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떠해야 하는 지 스스로의 마음을 다 잡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330페이지)(중략)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검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라고 조롱했다. 노무현의 인생만이 아니라 부림 사건 변론을 맡았던 이래 내가 했던 모든 것을 모욕하고 저주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대통령직 5년을 포함한 정치 20, 그 모든 것에 침을 뱉었다.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만들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분들을 향해 말했다. 노무현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는 아니라고. 노무현은 이미 정의니 진보니 하는 아름다운 이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고. 노무현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으니 노무현을 버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 노무현 때문에 도매금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분노. 노무현이 진보의 미래를 망쳤다는 원망을 쏟아 냈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보가 산다고 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미안했다. 내가 그분들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한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잘못, 나의 실패, 나의 좌절까지도 이해하며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고마웠지만 그럴수록 더 그런 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후략)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 폭우가 쏟아지는 장례식장 참배객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들려주는 어느 분의 증언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처럼 노무현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보다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폭우를 뚫고 달려와 순서를 기다리면서 추모하려고 하는 한 사람 한 사람..그들이 진짜 노무현을 사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깨어 있는 시민, 그 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영화관을 나서니 그동안 오랜 가뭄으로 매말랐던 대지를 흡족하게 적셔주는 단비가 영화 속의 그 추모 장면에서처럼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찔끔거려 흘러내린 눈물 자국이 아내에게 들킬 뻔 했는데,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