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요즘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친구들이 이야기 끝에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호승아, 요새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정말 외로움이 느껴져.”
친구들이 처음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그런 말을 듣게 되자 그대로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어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너무 외로워하지 마. 외로운 건 당연한 거야.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야. 외로우니까 사람인 거야. 그러니까 왜 외로운가 하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외로움은 당연한 거다 이렇게 생각해.”
글쎄요. 저의 이 말이 외로움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지닌 이 본질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외로움과 고독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고, 고독을 인간이라는 존재적 실존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제 친구들이 말하는 외로움이란 이 두 가지 의미가 다 한데 포함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외로움을 이해하는 바탕이 있어야 고독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외롭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혼자 길을 가다가 문득 엄습해오는 외로움 때문에 걸음을 멈출 때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거나 차를 들거나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더 외로워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결혼도 외로운 일이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일 또한 외로운 일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한테서 가장 많이 상처를 받듯이 가장 가까운 이들한테서 가장 큰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한테서도 저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세상 떠날 준비를 하시는 연로한 부모님을 보면 제가 그 부분에서만은 도무지 해드릴 게 없어 문득 외로움과 쓸쓸함이 몰려듭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어머니라 할지라도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어디까지나 어머니 당신의 몫이기에 아들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러나 주름투성이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면 어느새 인간의 이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는 내 마음 속에 사랑이 부족했을 때였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때는 그리 외롭지 않았습니다. 외롭다는 것은 어쩌면 내게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는지요.
사랑이 있는 한 외로움은 견뎌낼 수 있습니다. 왜 외로운가 하고 고민하기보다 왜 사랑이 부족한가 하고 고민하는 게 더 낫지 않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2006.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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