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제주도 여행 - 추사 유배지, 그리고 세한도

석전碩田,제임스 2015. 1. 24. 22:56

금까지 몇 번 제주도를 다녀왔지만 지난 며칠 간의 제주 여행은 과거 어느 여행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알찬 여행이었다고 자평하고 싶은 나들이였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에 가서 관광하듯이 겉만 보고 온 게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그 속을 들여다 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에서도 여행 셋째 날,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있는 <추사관>을 찾았던 일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완당이 쓴 글씨를, 하나 하나 빼놓지 않고 서투른 한자 실력을 동원해서 일일이 읽어 보기도 하고, 또 그의 약력 한 줄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한도>에 함께 씌여 있는 그의 글 속에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냈는 지를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래서인지 추사 기념관 근처에 겨울에만 피는 토종 수선화가 때마침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과 또 이 추운 겨울에 막 피기 시작한 청매가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지 골목길을 걷다가 이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거의 400여년을 살아오고 있다는 마을 토배기 '김경수' 아저씨를 만나 풋풋한 시골 인심이 곁들여 진, 사람 사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귤 농사를 짓고 있는 이 아저씨는 끊임없이 품종을 개량해내고 있다면서 2월경에 첫 출하를 하는 천혜향과 같은 과일을 수확할 때면 꼭 연락을 주시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젠 현지 농부가 지은 신선한 과일을 직거래로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로, 이곳에 <세한도>에 씌여 있는 편지 글의 전문과 그 번역문을 구해서 올려 봅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다시 읽어보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지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그의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1804~1865)에게 쓴 편지 옆에 그려 붙인 조그만 그림입니다. 이 그림과 이 편지 글에는 제주에 유배되어 있는 김정희 자신의 개인적 비분이 서려 있고, 유배지에서 바라 보이는 자기와 관련된 세상 인간사로 인해 느끼는 비분강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지난 해(1843)에 그대가 만학대운두 종의 책을 부쳐 왔고,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을 부쳐주었오.  

 

此皆非世之常有購之千萬里之遠積有年而得之非一時之事也  

이는 다 세상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머나먼 천만리 밖에서 여러 해를 걸려 구입한 것이지 한 순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오.  

 

且世之滔滔惟權利之是趍爲之費心費力如此而不以歸之權利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如世之趨權利者  

더구나 온 세상의 풍조는 오직 권세이익만을 좇는데, 그대는 이 책들을 구하느라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들여서, 권세가나 재력가에 주지 아니하고, 마침내 외딴 섬에서 초췌하게 몰락한 사람에게 주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가나 재력가를 좇듯이 하였구려.  

 

太史公云以權利合者權利盡而交疏  

태사공太史公(사기를 지은 사마천을 칭함)이 말하기를, "권력이나 이익으로 어울리는 자는 권세나 이익이 다 떨어지면 그 교유도 소홀해진다"라고 하였다.  

 

君亦世之滔滔中一人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不以權利視我耶  

그대 역시 세상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초연히 스스로 권력이나 이익의 테두리 밖에 벗어나서 권세나 이익을 가지고 나를 보지 않는 것인지요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지요?  

 

孔子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공자孔子 말씀에 "추운 시절이 된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 하였오.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소나무와 잣나무는 바로 사계절 상관없이 시들지 않는 나무들이오.  

 

歲寒以前一松栢也歲寒以後一松栢也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추워지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추워진 이후에도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성인께서는 특히 추워진 이후에 그들을 칭찬하셨다오.  

 

今君之於我由前而無加焉由後而無損焉  

지금 그대가 나에게 대하는 것이 이전에 더함도 없고, 이후라서 덜함도 없지 않았소  

 

然由前之君無可稱由後之君亦可見稱於聖人也耶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다면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소.  

 

聖人之特稱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성인이 특별히 칭찬하신 것은 늦도록 곧은 지조와 굳센 절개를 위함뿐만 아니라, 역시 추워진 뒤에 느끼신 바가 있었기 때문이오.  

 

於乎西京淳厚之世以汲鄭之賢賓客與之盛衰如下邳榜門迫切之極矣悲夫

! 서한西漢의 순박한 세상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은 어진 사람들마저 그 빈객賓客들은 그들과 잘 교유하다가 돌아서곤 하였으니, 하규下邽 사람이 문에 방을 써 붙여 풍자한 것 같은 박절함이 너무도 극단적이었으니 슬픈 일인지고.  

 

阮堂老人書  

늙은이 완당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