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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차가운 장미>

석전碩田,제임스 2014. 6. 9. 13:26

소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서로 섹스를 하는 사이면 소통이 잘 되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 비밀을 공유할 정도면 소통이 되는 사이일까? 소통이 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걸까? 현대인들이 찾고 있는 소통과 그것을 통한 위로는 사랑으로 충족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다층적인 질문에 답하는 영화가 바로 <차가운 장미>의 줄거리인 것 같습니다. 영화 <차가운 장미> 속 모든 캐릭터들에게는 소통과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간의 관계를 소통이라는 Key word로 해석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작 이런 소통과 위로는 영화 속 캐릭터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충족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이런 소통과 위로는 가끔 모호하고 너무도 습관적이어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 문득 찾아 온, 견고했던 관계 사이에, 가장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균열. 그러나 딱히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상의 삶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폴과 아내 루시가 안개 가득한 언덕 위를 걷는 장면은 이런 영화 속 캐릭터들이 만나게 되는 삶의 이런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성실하고 유능한 신경외과 수술 전문의 폴은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성공한 의사로서, 큰 저택과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남들이 생각하는 부와 명예를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배달되기 시작한 의문의 장미 다발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니, 흔들린다기 보다는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삶을 그대로 유지해 가는 폴이지만, 어쩔 수없이 서서히 장미와 관련된 사건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전혀 빈틈이 없을 것 같은 폴에게 다가 온, 루라는 젊은 여인의 존재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상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에는 그저 나와 그것, 나와 타인이라는 설정 속에서 바라 봤겠지만, 개인의 삶 속으로 불쑥 뛰어들어 온 젊은 여자 루에 대한 베일이 하나 하나 벗겨져 나가면서, 폴은 나와 그것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Ich und du)와의 관계, 소통하는 관계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진정한 소통은, 흔히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에서는 남들에게 선뜻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을 생산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비밀을 서로 공유하는 사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진정한 소통을 경험함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일까지 벌어지게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우리 삶에서는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폴과 아내 루시와의 관계. 그러나 아내 루시는 남편보다는 그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 제라르와 더 깊은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둘 만의 비밀이 있고 또 그들의 소통과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빅터의 실제 아버지가 폴이 아니라 제라르임을 암시하는 대사, “시합에서 누가 이기고 있어요?”라는 아들의 질문에, “네 아빠!”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히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들조차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둘만의 소통이 있었기에 아내 루시는 무료한 일상적인 삶속에서도,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겠지요.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의 결과는 루시의 언니, 마틸드처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쓸쓸하게 정신병원에서 방치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친절한 설명도 영화는 놓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부부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영화 속의 성공한 외과의사 폴과 아내 루시와 참 많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부부 대부분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잔잔한 일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 전개가 공감가는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소통과 그리고 그것을 통한 위로와 치유에 목 말라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느 날 불쑥 끼어 든 사건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삶에 대한 인식들을 일상을 붕괴시키는 감정의 충돌이 아닌,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자기가 애타게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잔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영화가 바로 <차가운 장미>였습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O.S.T. “다정한 양귀비의 가사입니다.

 

이건 그저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해요

 

당신의 그 사랑 얘기는요

 

양귀비의 열정도 눈물도

아까울 뿐이죠

 

끝까지 들어보면

당신도 알 거에요

 

그녀를 사랑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죠

 

다음 날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반쯤 벗은 채로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있었죠

 

드넓은 밀밭

한 가운데에서...

 

그렇지만 그녀의 심장이 뛰던

하얀 육체 위엔

 

붉은 피 세 방울이

꽃처럼 떨어져 있었죠

 

한 떨기 양귀비처럼

아주 여린 양귀비처럼

 *배경음악은 Sting의 Desert R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