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한식일 성묘, 그리고 부산 나들이

석전碩田,제임스 2014. 4. 6. 16:53

마치 긴 여행을 다녀 온 듯한 기분이 드는 나들이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2014년 한식일을 맞아, 매년 그랬듯이 고향에 가서 선산의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고 내가 태어나서 자란 그리운 고향 마을을 방문하는 시간을 계획하면서, 올해에는 멀리 부산까지 내려가서 남녘의 봄 꽃 구경도 실컷하고, 금정산 산행과 동래 온천에 들러 온천욕도 하고 와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사는 유년시절의 친구들과 연결되면서 뜻밖에도 이번 여행은 잊지 못할 멋지고 근사한 추억 만들기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길게는 40년만에 만나는 친구, 또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그냥 스쳐지나가듯이 만났던 친구를 만나 같이 산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다리는 시간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 날짜를 잡아 놓고 기다리는 듯 여삼추와 같았습니다.


그동안 살아 온 삶의 모습들은 다 다르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유년의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럼 없이 손을 잡을 수 있고 또 같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슴 설레는 만남의 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고향을 떠나 멀리 부산에 정착해 살면서 친구의 우정이 많이 그리웠던 친구들의 진심어린 영접과 환대는 제가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황송하고 고마운 그것이었습니다. 


고향 마을, 경북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 자리섬 마을



  

고향 마을을 지키고 계신 아지매들을 만나, 그들이 손수 담근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덤으로 얻어 온 건 고향을 찾은 우리들에게 특별한 보너스였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대구에 살면서 고향을 오가면서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는 친구 영현이는 든든한 존재입니다.


봄 꽃같은 친구들이 사는 곳 부산으로, 우리 부부는 영현이 차를 이용해서 함께 이동했습니다. 더구나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아내에게는 부산이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동래 온천 지역까지는 2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케이블카로 금강 공원에 올라 부산의 전경을 내려다 보다


   


매사에 용의주도한 친구는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온천호텔에 짐을 풀게 하고 곧바로 금강 공원 케이블카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막차 시간을 미리 체크해 놓았는지 서두르는 친구의 모습에서, 짧은 일정 속에서 하나라도 더 많은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엿보였습니다. 멀리 해운대의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 뒤로 부산 앞 바다가 꿈결같이 보이는 멋진 시내 광경이 멋졌습니다. 케이블카를 오르는 동안 보이는 산에는 군데 군데 피어있는 산 벚꽃이 만개하여 마치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한폭의 수채화를 펼쳐 놓은 듯 합니다.


  

               <노랑 제비꽃>                              <남산 제비꽃>                            <고깔 제비꽃>

금강공원 트레킹 길 옆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 꽃을 보면서 꽃 이름을 훤히 꿰고 있는 친구는 금정산 습지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거의 전문가 수준에서 야생화들을 알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보라꽃으로 피는 제비꽃만 제비꽃인 줄 알았다가, 제비꽃도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 부근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이동


   

부산역 맞은 편에서 30년 넘게 생업으로 식당을 해 온 친구는 우리들이 들이닥친 그 날, 장사보다는 친구들과 합석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헤쳤습니다.  세월의 강이 저만치 넓게 우리를 갈아놓았지만 서로가 마음을 터 놓고 소통하는 데에는 달리 강을 건너와야 한다든지, 다른 인위적인 장치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야, 친구야 반갑다. 오랜만이다!"면 충분했습니다.

    

밤 새워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다음 날 금정산 산행을 계획하고 있어, 아쉽지만 다음 날을 기약하면서 예약해 둔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입니다. 젊은 날에는, 인생이 별거 있는 것처럼 머리 쳐들고 교만하게, 거만하게 거덜먹거리면서 살았다면 이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서로를 아껴주면서,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금정산, 북문에서 시작하여 의상봉, 원효봉을 거쳐 원점으로


   

  

오전 8시 40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야산 같은 길을 따라 산행을 출발합니다. 어릴적 온 산을 뛰어다니면서 진달래 꽃을 따 먹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진달래라는말은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참꽃'이 우리가 쓰던 말이었지요. 참꽃이 만발한 이 길이 가을에는 억새로 뒤덮혀 장관을 이룬다니, 가을에 다시 한번 찾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손 도손 이야기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걸은지 20분 정도지났을까요, 이내 우리는 산성 등성이에 올라설 수 있었지요. 갑자기 동래구 구서동 쪽이 내려다 보이는 확 트인 전망이 펼쳐지면서 금정산 북문 코스의 절경에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성을 쌓아놓은 듯 층층이 쌓여있는 바위들이 기암 능선을 이루면서 쭉 늘어서 있는 능선을 따라 산성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중국의 만리 장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걸으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우리를 치유하고 더 가깝게 해주는 약념 역할을 합니다.이런 멋진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반갑게 맞아 준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산행 중, 간단하게 싸 간 간식들로 둘러 앉아 간식을 나누는 시간은 산행에서 갖는 보너스입니다.


  


 

(왼쪽부터, 배동석, 박매희, 이수미, 배영현, 김합수, 이경희)

12시 정각,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모양이 범상치 않은 나무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저 나무 줄기들이 형제 자매처럼 여러 줄기가 한데 모여 힘차게 뻗어 올라 무성한 새싹을 내면서 근사한 나무를 이룬 것처럼, 오늘 함께 한 친구들 모두는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겸손하게 마음을 한데로 모아 서로 돕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등산코스: 금정산천주교 목장~4망루~의상봉~원효봉~북문~북문습지~학생교육원, 소요시간 : 4시간

*배경음악은 Karoline Kruger의 You call it lov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