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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영성 - 유진 피터슨 著, 포이에마 刊

석전碩田,제임스 2013. 10. 7. 16:49

 

왼쪽 안면 마비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물리 치료로 한방에서 침을 매일 맞는 중, 우연히 절에서 침을 맞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같은 <구안와사>라도 개인차가 있고 또 회복의 예후가 개인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서 침을 맞으면 용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모두 들을 필요는 없지만, 정작 이 증상으로 불편을 겪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 집안의 선산이 있는, 고향 뒷 산에 5~6년 전에 들어선 절이 있습니다. 아직은 건물이 세워진 것도 아니고 또 정기적인 신도가 있는 그런 절도 아닙니다. 한창 터 닦기를 해 나가는 조그만 절입니다. 우연히 이곳에서 시무(포교)하는 스님이 침을 잘 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들렀다가, 그 후 서울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세번씩이나 더 이곳을 방문하게 된 곳입니다. 그 이유는, 스님의 침이 용해서라기보다는 그가 환자들과 소통하는 자세가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아파서 침을 맞으러 오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그의 자세가 바로 제 눈에 띈 첫번째 덕목이었습니다. 건축을 위해서 한창 토목 공사 현장에 있는 중이라도 찾아 온 손님이 있으면, 언제 내가 일을 하고 있었냐는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서 후덕한 웃음을 웃으면서 진지하게 침 놓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내담자 중심의 환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너무도 잘 아는 탁월한 상담가처럼 말입니다.        

 

또 침을 놓으면서 아무 말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제로 주절 주절 풀어가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그가 갖고 있는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참외 농사를 짓는 인근에 사는 농부 부부와는 올해 지은 참외 농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며 또 그 수확량이 주제가 되었고, 허리가 아파 몇 번을 와서 침을 맞고 있는 부부와는 우리가 살아가는 험악한 세태를 믿을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믿어야 된다는 약간은 종교적인 주제가 대화의 내용이었습니다. 상대가 누구이건 또 어떤 주제이건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스님은 탁월한 소통하는 목회자였습니다.  

 

이 가을, <목회>와 관련하여 씨리즈로 발간된 유진 피터슨의 책들을 읽어 봐야 겠다고 결심한데에는 바로 이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혀 별개의 책인데, 포이에마 출판사에서 <목회의 기초>, <목회자의 영성>, <목회자의 소명>이라는 제목으로 합본 형식으로 발간한 유진 피터슨의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아쉬웠던 것은, 유진 피터슨의 주옥같은 이런 책이 번역본의 촌스러운 제목 때문에, 많이 읽혀지지 않을것 같다는 우려였습니다. 마치 목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나, 목사가 된 초년생들만 읽어야 하는 책 같이 제목에서부터 한정지어버렸다는 아쉬움의 느낌을 떨져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 책은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임을 안수 받은 '목회자'들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건물도 채 들어서지 않아 콘테이너 박스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찾아 오는 사람들과 탁월하게 소통하고 있는 작은 사찰의 스님이 하는 일도 <목회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록 목사는 아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목장으로, 날마다 만나는 사람이 자신이 목양하는 신도가 되어야 하는 관점에서는 우리 모두도 '목회자'로 살아내야 하는 시대가 오늘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진 피터슨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명사가 오염될 때 형용사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건강한 명사에는 형용사가 필요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목사'라는 명사가 가장 오염된 단어 중의 하나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날 '목사'라는 단어 하나만을 사용해서는 원래의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형용사의 지원을 받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진실한 목사, 성실한 목사, 참 복음을 증거하는 목사 등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라는 단어가 오염되지 않고 본질적으로 '목사'가 되려면 어떤 면이 갖춰져야할까? 바로 이 주제가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목회자의 영성' 내용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그는 목사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바쁘지 않은 목사'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쁜 목사 나쁜 목사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지요. 그의 말을 빌면, 허영심과 욕심이 있기 때문에 목사가 바쁠 수 밖에 없고, 또 게으르기 때문에 바쁘다고 단언합니다. 다음으로, 전복적인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사용한 '전복적'이라는 단어는, 어찌보면 굉장히 불온한 단어입니다. 현 체제를 반대하여 뒤집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가치 체계와 체제를 만들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목사는 이 땅에서 전복적인 목사일 때 목사로서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복적인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는 과정에 믿음의 눈으로 뛰어들 줄 아는 '기도와 비유'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번째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묵시적인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묵시록을 기록한 요한을 예로 들면서,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요한이 했던 것은, 묵시를 통해서 그들을 위로하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보여주면서 '기도하는 목사'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묵시록에 보면 도입 문장 몇 개 다음에 기도의 장소에서 기도하는 요한을 만나게 된다(1:9~10). 장소 : '밧모섬에 있었더니.' 기도: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일곱 회중의 목사라는 복잡한 임무를 맡았고, 또 묵시록이라는 신학 시도 쓴 그는 결코 기도의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도의 행위도 버리지 않는다. 그 책의 마지막에도 그는 여전히 기도하고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목회자의 영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책의 원제는 <The contemplative pastor(1989년 초판)>입니다. 포이에마 출판사에서 지금과 같이 유치한 제목으로 출간하기 전, 다른 출판사에서 <묵상하는 목회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할 때의 책 제목이 훨씬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에는 묵상하는 목회자로서의 모습으로 자신의 안식년 체험을 바탕으로 쓰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하나님과 성령의 존재를 감지해 낼 수 있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목사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애니 딜라드의 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피터슨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배워야 할 것 중 그가 제시하는 첫번째 덕목은, 언어의 마술사인 시인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