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상에서 최초로 흑인에게 감독상의 영예를 안겨 준 영화 <노예12년>을 토요일 아내와 함께 감상했습니다. 지난 달 개봉하여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우리 영화 <변호인>이 그랬던 것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작품이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살았을 당시와 현재 내가 숨쉬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와 대비해서 생각하면서 관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자유인으로 태어나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삶을 누리던 바이올린 연주가 솔로몬 노섭은 1841년, 공연을 제안 받아 가게 된 워싱턴에서 사기, 납치를 당해 노예수용소로 보내집니다.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된 솔로몬은 자유인 신분은 물론 이름마저 빼앗긴 채 루이지애나로 보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아니었던 솔로몬은 ‘플랫’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그 곳에서 12년의 여정을 견디며, 생존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1853년 1월, 그는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캐나다인 백인을 만나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노섭은 자유를 다시 찾은 지 약 1년 후에 12년 간의 지옥 같고 절망적이었던 노예 생활을 담담하게, 그리고 상세히 적은 책, <노예 12년>을 펴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건뿐 아니라, 노예제도의 현실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충격 받았고, 책은 1853년 출간 당시 18개월 만에 2만 7천부가 판매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160년이 지난 이 책의 역사적 가치를 21세기에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현대인들에게 ‘솔로몬의 용기와 자존심’이라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나누고자 했다”며 주체성과 신념, 희망을 놓지 않았던 한 인간의 12년 간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게 된 계기를 밝혔습니다. <노예 12년>은 노예 수입이 금지되었던 1841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통해 흑인 노예의 시선으로 바라본 당시의 실상, 그리고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 제도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린 백인들의 비극적 역사를 그린 영화로서 그 의의를 가진다고 할 것입니다.
노예제도가 합법적인 주와 그렇지 않은 주가 혼재되어 있던 시절, 법적으로 합법화되어 있던 주에 살고 있던 농장주들은 당장 필요한 노동력을 값 싸게 살 수 있는 수단으로 노예를 사고 파는 일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잘못된 법의 미명하에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잘못된 제도에 동조하고 말았습니다. 영화의 말미에, 억울하게 노예로 보낸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서 소송을 했지만, 승소한 케이스는 하나도 없다는 슬픈 메시지를 자막으로 내 보냄으로써, 이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적인 기법으로 길게 표정을 클로즈 업 해서 비추는 장면이라든지 먹먹한 장면을 길게 비춰 주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마음 속에서 저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 진 땅이 진짜 지금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맞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불과 100여년 전이었을 뿐인데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일들이 자연스럽게 자행되었다는 게 사실일까, 그리고 혹시 오늘날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불편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전 온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염전 노예 사건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바로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슬픈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이라는 21세기 최악의 인권 말살 상황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선량한 우리 백성들이 겪고 있는 노예 같은 현실이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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