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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먹으라 - 유진 피터슨<IVP 刊>

석전碩田,제임스 2009. 8. 14. 17:43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글을 인용하며 '이 책을 먹으라'고 합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그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10:10)"

 

이 책의 모티브가 된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이 구절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천사가 요한에게 명한 것은 두루마리를 받아 고이 보관하라는 것도 아니었고, 필사를 요청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먹어버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저자인 유진 피터슨도 성경을 읽지 말고 먹으라고 말합니다. 실로 모세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글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들려졌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하고 더 나아가 먹을 때 우리에게 자양분이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음식물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피와 근육과 뼈를 이루어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우리의 정신을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정보로 습득하지 말고 듣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잘게 씹어서 먹음으로 그 양분이 혈관을 타고 온 몸과 뼈마디로 흘러들어가 결국은 말씀대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책을 먹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조직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이 읽는 그것이 된다. 만약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잡담 그 이상이 되려면 반드시 내면화되어야 한다.”

 

유진 피터슨은 먹는다는 의미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그냥 Text(텍스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이 되기 위해서는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읽는 동시에 살아내는 것, 그리고 읽는 것과 사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 듣기만 하고 살아내지 못한다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도 입에는 달지만 먹은 후에는 배에는 쓰게 된다는 표현을 사용했나 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이니 입에는 달겠지만,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든 고난도 감내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 반드시 따라야 하니 그 배에서는 쓰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을 먹는 공동체에 불러 주시고 이렇게 그동안 말씀을 먹으며 말씀의 열매를 삶을 직접 살아냄으로써 거두게 하심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IVP의 유진 피터슨 영성 시리즈 제 2권에 속하는 이 책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지혜를 말해 줍니다. 언어의 본질, 영적 독서의 고전적 실천, 성경 번역의 역할 등 영적독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몽골 단기선교를 떠나면서 여행 가방에 쑤셔 넣고 간 책 중의 한 권인데, 여유시간마다 틈틈이 읽으려고 꽤 많은 책을 갖고 갔으나 다른 책들은 전혀 읽지 못하고 이 책만 읽고 말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영적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유진 피터슨의 호흡을 따라가다보니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부분은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이 우리 손에 주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골고다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빌라도에 의해서 번역된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세 개의 언어로 쓰여졌습니다아람어, 라틴어, 그리고 헬라어가 그것입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형 선고를 했던 총독 빌라도가,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최초로 예수님의 주권을 선언하는 말을 지시하고 번역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유진 피터슨은 말합니다.  

 

그 후, 성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합니다우선, 바벨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사 에스라가 했던 일-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시 낭독해 주는 일 -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그러나, 당시 그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무엇이었으며, 그 언어로는 조상들이 읽었던 성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세대였기 때문에, 결국 13명의 레위인들이 "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깨닫게"(8:8) 했다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결국 13명의 레위인들이 했던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언급합니다.  그들이 한 일은그 날 읽혀진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단어를 번역해서 백성들에게 해석해 준 사전적인 번역의 제공 차원이 아니라가슴과 영혼으로 그 말씀에 그들의 삶을 참여시키는 일이었습니다그들이 번역해서 들려주는 말을 듣고 백성들은 처음에는 울었고 그 다음에는 즐거워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8:9~12) 

 

또 아람어로 번역되고 다시 헬라어로 번역되는 과정, 영문 번역본 중에서 우리가 가장 권위있다고 인정하는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의 문제점과, 그 이전에 흠정역의 기초가 될 정도로 한 개인(William Tyndale의 신약성경 번역본, 1526년 발행)이 이미 완벽한 번역을 했던 것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언급하면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핵심은, 성경의 언어는 삶과 동떨어진 사변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사용되어지는 평상의 언어로 씌여진 언어로써, 삶의 현장에서 생명력을 가질 때 말씀이 바로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평생의 사명으로, 내가 읽는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그것을 살 수 있는가?"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역에 헌신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인격적으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읽는 사람, 단지 자신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을 살기 위해서> 성경 읽기, 영적 독서를 배우는 사람들의 무리를 모으고 싶다는 평생의 사명을 고백하면서 책을 끝맺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진 피터슨의 생생한 말로 <영적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사람들이 가장 소홀히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성경을 읽는 것과 연관된 일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것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바로 성경이 자신을 형성해 가도록, 즉 성경대로 살기 위해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경을 적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읽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는 동시에 그것을 살아야 한다. 성경을 읽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서 혹은 성경을 읽고 난 결과로서 그것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독서가 상호적이 되어야 하고, 몸짓과 말 그리고 그것의 상호 작용이 독서를 삶에 동화되게 하고 삶을 독서에 동화되게 해야 한다. 성경을 읽는 것은 복음을 사는 것과 분리된 활동이 아니라, 그것에 꼭 필요한 활동이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바로 그 분이 발언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처럼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