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p.s. :
바람을 생각하면 부재와 상실, 그리움과 회한, 방황 혹은 삶의 무게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흔적 또한 없습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시 해변의 묘지 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바람을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으로 인식했으며, 시인 남진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연습 일곱번째 연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변주하였습니다. 미당 서정주는 그의 시 자화상 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마종기 시인의 시와 가수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가사가 흡사해서 시를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작사가 양인자가 마종기 시인에게 사과하고 용서을 받아 일단락되었습니다.
'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천(歸天) - 천상병 (0) | 2008.12.05 |
---|---|
그 꽃 - 고은 (0) | 2008.12.04 |
선운사에서 - 최영미 (0) | 2008.11.26 |
농담 - 이문재 (0) | 2008.11.24 |
사평역에서 - 곽재구 (0) | 2008.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