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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버킷 리스트>를 보고..

석전碩田,제임스 2008. 4. 29. 20:19

 

지난 일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신촌에 새로 생긴 영화관인 메가박스 신촌점에서 <버킷 리스트>를 감상했습니다. “영화 예약해 놓았으니 시간을 내라”는 말에 어른들보다 더 바쁜(?) 두 아들이 대뜸 이의를 제기합니다. 자기들의 시간과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영화 예약을 하는 법이 어디 있냐는 겁니다.

 

지난 몇 주간 동안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게 더 많다는 사실.  예전엔 내가 굳은 의지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갑자기 몸이 아프고 의욕이 없어지면서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헤맬 때,  ‘내가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는 것도  필요하다는 자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여럿 중, 이제는 머리가 다 커 버린 두 아들의 문제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욕을 좀 먹더라도 더 늦기 전에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모르긴해도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중년의 가장으로서 저의 <버킷 리스트>를 만든다면 이것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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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재 최고의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특히 모건 프리먼의 경우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게 다가오는 흑인 배우입니다.

 

평생을 자동차 정비사로서 열심히 살아온 카터(모건 프리먼 역)는 암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책임지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후 평생을 정비사로 살아온 아주 인텔리한 흑인입니다. 영화에서도 퀴즈를 푸는 TV 프로그램의 정답을 거의 완벽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또 다른 한 명의 주인공 에드워드(잭 니콜슨 역), 그는 병원을 운영하는 어마어마한 재벌 사업가이며, 지금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신세입니다. 그것도 1인실 병실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에 주창해 왔던 것처럼 병원은 Spa(온천 호텔)가 아니므로 <2인 1실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확고한(?) 정책에 따라서 2인 1실에 입원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영화는 먼저 입원한 카터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합니다. 좁은 병실에서 만난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인생의 말년에 ‘암선고’를 받아 입원해 있다는 것 밖에는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른 삶의 여정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 둘이 삶의 여정에서 만난 복병(암)을 통해서 부부지간의 관계도 끼어들지 못하는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시선>을 우리로 공감하도록 유쾌하게 유도 합니다.

 

둘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그것을 실천하기로 합니다.

 

1. 장엄한 광경 보기, 2. 낯선 사람 도와주기, 3. 눈물 날 때까지 웃기, 4. 무스탕 셀비로 카레이싱, 5.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6. 영구문신 새기기, 7. 스카이 다이빙, 8. 로마, 홍콩 여행, 피라미드, 타지마할 보기, 9. 오토바이로 만리장성 질주, 10. 세렝게티에서 호랑이 사냥 ................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유머스럽게 접근하는 영화가 어쩌면 너무 가볍지 않나 하는 우려도 되지만, 또 짧은 영화 속에 죽음과 삶에 대한 너무 많은 교훈들을 쑤셔 박으려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식상해지기도 하지만, 순간 순간  유머스럽게 처리한 짧은 장면(대화)들을 삽입해서 그런 면들을 극복하려는 감독의 기술적인 의도들도 엿볼 수 있습니다.  재벌 오너와 그 비서가 주고 받는 위트가 넘치는 대화. 날카롭지만 상처주지 않으면서 서로 주고 받는 관계의 형성, 그리고 서로가 삶을 즐기는 모습들이 어찌 그리도 신선하게 다가오는지요.

 

인간은 결국 사랑, 특히 가족 안에서의 사랑만큼 큰 것이 없다는 사실도 말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외롭고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우리가 죽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할 것 중에서 하기 힘든 것이 바로 미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가장 사랑해야할 사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3번씩이나 결혼했습니다. 화려한(?) 결혼과 이혼의 경력이 있지만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과는 아버지의 꼿꼿한 생활 방식으로 연유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되었습니다. 먼저 다가서서 용서를 구해야하지만,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뻔한 딸에게는 절대로 다가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꾸만 스스로 멀어져 가면서 외로워합니다.  억만장자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화해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아직도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는 나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평생,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혈육,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도 가장 미워하면서 살아 온 것입니다.

 

영화는 결국 카터와 에드워드, 이 두 사람이 모두 죽는것으로 끝이 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인지를, 아니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해야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한번 쯤 생각하게 하는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두 주인공의 대화속에서 던져진 질문 두 가지가 마치 객석에 앉아 있는 모든 관객들도 답해야만 하는 것 같이 촉구합니다.

 

하나는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또 다른 하나는 "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