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인도의 불교 성지순례]-기차로 돌아보기

석전碩田,제임스 2008. 1. 3. 23:46

영겁의 세월을 사는 그들을 만나다 india


기차로 돌아보는 인도의 불교 성지 순례

▲ 타지마할

주어진 시간은 7박 8일. 인도정부 철도청에서 지난해 가을 운행을 시작한 ‘마하 파리니르반 성지 순례 열차’는 그 짧은 일정 동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부터 처음 설법을 전한 사르나트,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 탄생지 룸비니까지 안락하게 둘러보라며 손을 내밀었다. 버스를 타고 떠나면 한 달 가까이 걸렸던 인도 불교 성지(聖地) 순례의 여정이 기차 덕분에 훨씬 짧아진 셈이다.

첫째 날~셋째 날_ 델리에서 영취산(靈鷲山)까지

새벽 5시쯤 됐을까. 붉은 공단 커튼을 걷은 후 1, 2분이 지나서야 내 몸이 기차에 실려 뿌연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현실감이 몰려들었다. 외국인만 탈 수 있는 이 성지 순례 열차의 일정은 여느 패키지 관광처럼 부산하지 않다. 각각의 성지에서 시간을 들여 참배하거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명상에 잠기는 수행을 맛볼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 물론 첫날 델리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부터 맞닥뜨려야 했던 ‘인도다운’ 풍광들은 도시 풍경에 길들여진 정신을 아뜩하게 했다.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온 듯한 인파와 차량들,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소떼와 알 수 없는 언어로 배고픔을 호소하는 걸인들…. 간디와 타고르의 나라 인도는 잠에서 깨면 습관적으로 출근 생각을 하는 도시인에게 혼미하게 첫 인사를 했다.

▲ 성지 순례 열차

델리의 사프르다르정 역에서 오후 4시 출발하는 ‘마하 파리니르반 성지 순례 열차’의 지나치게 호화로운 출정식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승객이 역에 들어설 때마다 인도식 풍악이 울렸고, 전통의상으로 치장한 여인들은 타는 이들의 이마에 ‘축복’을 뜻하는 붉은색 ‘빈디’ 를 그려 넣었다. 분주하게 다즐링 차를 나르는 직원의 깍듯한 미소는 얼떨결에 세 잔이고 네 잔이고 차를 들이키게 만들었다. 일등칸 객실에는 위·아래로 두 개의 침대가 설치돼 있다.

하룻밤을 꼬박 기차에서 보내고 난 후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성지 순례가 시작된다. 부처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던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이 첫 방문지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에워싼 사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만큼 미려한 석조 예술품이다. 미얀마 부탄 중국 일본 한국 네팔 등의 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보드가야 국제사원구역에서는 한 곳이라도 더 보려는 순례자들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셋째 날, 길은 라즈기르로 이어졌다. 세계 최초의 절이라는 베느바라 비하나(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나 부처가 법화경을 처음 설파했던 영취산(靈鷲山) 정상에 올라 새해 소망을 담아 기도를 올리다 보니 붉은 석양이 하늘에 물들어갔다.

넷째 날~마지막 날_ 갠지스 강을 지나 타지마할까지

나흘째 들어서자 기차 여행이 제법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부실해 보였던 커리와 달(인도 렌즈콩 요리)에 군침이 돌았고 성지를 들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게 됐다. 부처가 처음 설법을 했던 사르나트에 들어서자 거대한 탑 ‘다멕 스투파’가 눈에 띄었다. 벽면의 기하학적인 문양들은 1300년 넘는 세월에 휩쓸려 부분부분 일그러진 모습인데도 지난 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흔적을 뿜어내는 듯했다.

▲ 열차 승객을 맞는 인도 여인들

오후에 바라나시로 옮겨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가이드가 살짝 ‘경고’를 했다. “불교와 힌두교에서 모두 성지로 꼽는 갠지스 강변의 고도(古都) 바라나시는 모든 여행객을 혼돈에 빠뜨리지요.” 갠지스 강을 유람하는 ‘나룻배 투어’는 수많은 계단식 강변인 ‘가트’들과 일몰을 보여주며 매혹적으로 출발했지만 곧 수영하는 소년들과 빨래하는 아낙, ‘볼일 보는’ 소들이 뒤엉키는가 싶더니 급기야 시신을 불 태워 강에 띄우는 수장(水葬)까지 선연히 목격하게 했다.

기차 여행 닷새째는 죽음을 예감한 부처가 찾아 최후의 설법을 폈던 작은 마을 쿠시나가르에 들렀고 엿새째는 네팔의 국경을 넘어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로 향했다. 부처가 살았던 시절 가장 번창했던 도시 스라바스티에서 한때 부처가 거처했던 기원정사(지금은 터만 남았다)를 방문하는 것으로 성지순례는 일단락되었다.

마지막 8일째 델리로 귀환하기 전 기차는 아그라에 잠시 머물렀다. 관광객들이 인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타지마할은 역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이 아내 뭄타지 마할에게 바쳤던 이 거대한 무덤. 흰 벽에 가만히 손을 대자 햇빛 때문인지 따뜻한 돌의 기운이 온몸으로 번져왔다.

인도 기차 여행 정보
 

‘마하 파리니르반 성지 순례 열차’는 외국인 승객만을 위한 전용 열차다.(때로 돈 많은 인도인이 탑승하기도 한다.) 일등칸 기준으로 하루 요금은 150달러. 영어 가이드, 식사, 관광지 입장료와 차량 운행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3일 이상만 예약이 가능하며 가장 넓은 1등칸과 그보다 침대 사이즈가 작은 2등칸, 그리고 객실에 문 대신 커튼이 처진 3등칸으로 나뉜다.

1~3등칸 모두 2인실 혹은 4인실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직항인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할 경우 항공료를 포함한 8일 패키지 요금이 255만원 정도. 1월 19일, 2월 2일·23일, 3월 8일·22일 출발 예정이며 예약은 인도정부철도관광 한국지사(02-730-0666, www.irctc.co.kr)에서 가능하다.

열차 내에서는 언제나 무료로 커피와 차, 각종 스낵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불교미술 화집이나 요가 관련 서적 등 책도 무료로 빌려준다. 선량한 웃음을 보내며 책이나 음료를 가져다 주는 승무원들에게 100루피(약 2500원) 정도 팁을 주는 것이 관례다.

조선일보
정명효 ‘에이비로드(AB-ROAD)’ 편집장(인도=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