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이제는 - 오규원 비가 온다. 어제도 왔다. 비가 와도 이제는 슬프지 않다. 슬픈 것은 슬픔도 주지 못하고 저 혼자 내리는 비뿐이다. 슬프지도 않은 비속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속에서 우산으로 비가 오지 않는 세계를 받쳐 들고 오,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비가 온다. 슬프지도 않은 비. 저 혼자 슬픈 비.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비에 젖고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가면도 없이 맨얼굴로 비 오는 세계에 참가한다. 어느 것이 가면인가. 슬프지도 않은 비. 저 혼자 슬픈 비. - 시집 (민음사, 1975 초판, 1995 개정판) * 감상 : 오규원 시인. 1941년 12월 경남 밀양시(삼랑진읍 용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규옥(圭沃)이며 호적상으로는 1944년생으로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