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전(略傳)
- 허향숙
다섯 살
인형 머리 대신
문득, 생머리카락을 빗질하고 싶었다
동생을 낳아달라며
일년을 졸랐다
열여섯
갓 부임한 도덕 선생의
투명한 안경테 너머로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심장이 자주 울컥했다
스물여섯
불도저 같은 남자를 만나
出家 대신 出嫁를 택했다
그의 삶에 나를 덧대며
조용히 세상을 배웠다
스물여덟
첫아이가 몸에 들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임신부처럼
배를 내밀고 다녔다
서른한 살
아버지를 잃었고
서른 여섯
어머니마저
시간에 저당 잡혔다
마흔여섯
열여섯 살 딸을
가슴에 묻었다
그날 이후
계절은 단 한 번도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죽음을 살아낸 지 십 년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새로 태어난다는 걸
알았다
어제는
산책길에서 만난 고목이
환하게 꽃 피우는 것을 보고
칼칼 웃었다
- 시집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솔출판사, 2026)
* 감상 : 허향숙 시인, 시 낭송가.

1965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습니다. 2018년 계간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백강 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그리움의 총량>(천년의 시작, 2021), <슬픔은 늙지 않는다>(전자소시집, 2021),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천년의 시작, 2024),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솔, 2026) 등이 있습니다.
2021년, 그녀의 첫 시집에 실린 ‘울음통’이란 제목의 시를 이곳 <아침에 읽는 한 편의 시> 코너에 소개하면서 알게 된 시인이 벌써 세 번째 시집을 상재(上梓)했습니다. 그 후 시인의 시편들을 시집이 새로 나올 때마다 이곳에 소개하며 문학의 연(緣)을 이어올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올해 진갑을 맞은 시인의 삶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그래서 그동안 시인이 노래했던 시편들을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녀가 달려온 삶의 여정을 축약해 놓은 이력서와도 같은 시입니다.
삶을 짧게 적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더구나 기쁨과 상실, 기다림과 견딤으로 이루어진 한 사람의 시간을 몇 줄의 시로 담아낸다는 것이 말입니다. 허향숙 시인의 ‘약전’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시입니다. 제목 그대로 ‘짧은 전기(傳記)’이지만, 이 시는 단순한 이력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의 마음이 어떤 시간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고백처럼 읽힙니다.
시는 다섯 살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인형 머리 대신 / 문득, 생머리카락을 빗질하고 싶었다’ 아주 짧은 장면인데도 아이가 누군가를 돌보고 싶어 하는 마음, 생명을 향해 손을 내미는 마음이 선연하게 전해집니다. 이어지는 ‘동생을 낳아달라며 / 일 년을 졸랐다’는 구절에서는 일찍부터 타인을 품고 살아갈 운명 같은 것이 엿보입니다. 열여섯의 설렘은 또 얼마나 맑고 아련한지요. ‘투명한 안경테 너머로 /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좋아한다는 말 대신 ‘아지랑이’ 하나로 마음의 흔들림을 보여주는 시인의 감각이 참 곱습니다. 또 ‘심장이 자주 울컥했다’는 표현 또한 인상적입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이유 없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놓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스물여섯, 시인은 “불도저 같은 남자”를 만나 “出家 대신 出嫁를 택했다”고 말합니다. 재치 있는 언어 속에서도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배워가던 젊은 날의 행복과 슬픔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품었던 행복, 부모를 차례로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이 시의 중심에는 마흔여섯의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열여섯 살 딸을 / 가슴에 묻었다’ 이보다 더 큰 상실이 또 있을까요. 시인은 그 슬픔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그날 이후 / 계절은 단 한 번도 /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시간 속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마음, 세상은 봄과 여름을 되풀이하는데 자신만 다른 계절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하기도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게 죽음을 살아낸 지 십 년. 시인은 마침내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 새로 태어난다는 걸 /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사라지는 줄 알았던 강물이 더 큰 품으로 흘러가 다시 순환하듯, 슬픔 또한 한 사람을 끝내 무너뜨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견디고 견딘 시간 끝에 시인은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노래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연은 더욱 먹먹합니다. ‘산책길에서 만난 고목이 / 환하게 꽃 피우는 것을 보고 / 칼칼 웃었다’ 오래 울어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 있습니다. 환하게 웃지만 그 안에 아직 마르지 않은 슬픔의 결이 남아 있는 웃음. ‘칼칼’이라는 시어 속에는 그런 삶의 질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서 같은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나목에게’란 제목의 시가 바로 이 마음을 노래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나목(裸木)에게
- 허향숙
나는 네가 좋아
허공을 즐길 줄 알아 좋아
외롭고 쓸쓸해서 좋아
그리워할 줄 알아서 좋아
기다릴 줄 알아서 좋아
헐벗은 몸으로도 소망 품은 채
겨울을 견딜 줄 알아서 좋아
한번씩 투덜대기도 하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애련哀戀에 물들지 않는
무채색이어서 좋아
나는 네가 좋아
너의 아픈 계절이 좋아
- 시집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솔출판사, 2026)
‘헐벗은 몸으로도 소망 품은 채 / 겨울을 견딜 줄 알아서 좋아’ 시인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목(裸木)은 결국 시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잎을 다 떨군 채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견디면서도 끝내 봄을 포기하지 않는 나무. 상실을 지나왔기에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고, 오래 기다려본 사람이기에 작은 꽃 한 송이에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삶. 그래서 마지막 고백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나는 네가 좋아 / 너의 아픈 계절이 좋아’
시집 말미(末尾)에 실린 산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안다. 상실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이름의 존재임을. 슬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임을. 누군가를 떠나보낸 자리는 빈자리가 아니라, 다시 만남을 준비하는 공간임을. 이제 상처는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한 빛으로 내 안에 내려앉는다. 한때의 고통이었고, 눈물이었고, 끝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내 삶의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약전’과 ‘나목에게’는 바로 이 문장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의 기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인 줄 알았던 슬픔을 품은 채 다시 꽃을 피워내는 일. 시인은 오늘도 우리에게, 아픈 계절을 지나온 삶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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