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는 사람
- 김주대
엄마, 이번에 새로 낸 책이야 자아 받아 이거! 책이 빨간 것이 꽃처럼 이쁘구나 야이야, 이런 거 낼라만 돈 마이 들잖나? 돈 안 들어 내가 도로 돈을 받고 내는 거지 그럼 돈 마이 받고 내거라 응, 알겠어 마이 받고 낼게 엄마, 이기 이래도 베스트셀러 오십등에 들었어 오십등이만 꼴찌잖나? 아냐 천권 중에서니까 일등하고 같아 그러만 축하한다 그래도 너무 일등 할라고 애써지는 말거라 뭐든 본래 일등 할라카만 욕심이 생기고 마음이 팍팍해진다 엄마, 책은 일등 해야 돈을 벌어 그래? 그러만 일등 하거라 욕심이 생기고 마음이 팍팍해진다면서? 거지같이 사는 니가 돈을 번다는데 까이꺼 욕심 좀 내만 어떻노 알겠어 그럼 욕심내고 마음 팍팍해질게 그카다가 마음 다친다 욕심내지 말거라 엄마, 욕심내야 돈 번다니까 그러만 욕심내거라
- 시집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걷는 사람, 2026)
* 감상 : 김주대 시인.

196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페이스북 시인', 'SNS 시인'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관념’이 아닌 ‘삶’ 자체로 SNS 공간에 시와 글을 쓰면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 시인입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민중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 첫 시집 <도화동 사십 계단>(청사)을 상재(上梓)하였고, 1991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 해 두 번째 시집 <그대가 정말 이별을 원한다면 이토록 오래 수화기를>(하늘땅, 1991)을 냈습니다. 그 후 <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 시작, 2007), <나쁜 사랑을 하다>(답게, 2009), <그리움의 넓이>(창비, 2012),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천년의 시작, 2017),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걷는 사람, 2026)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2014년부터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첫 문인화 서화집으로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현암사, 2015)을 낸 이래, <시인의 붓>(한겨레 출판, 2018), <꽃이 져도 오시라>(한길사, 2021), <108 동자승>(한길사, 2022), <포옹>(한길사, 2022), <사람 냄새>(시와에세이, 2023) 등을 연거푸 내면서 '그림 그리는 시인', '페이스북 대표 문인화가'로 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이 시는 지난 달 발간된 김주대 시인의 최신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그의 시집이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끝까지 통독하면서 그의 시 세계에 흠뻑 빠지고 말았습니다. 처음 시인이 SNS에 이 시를 발표할 때는 ‘출판기념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시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발간된 시집에 실릴 때에는 ‘줏대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잠시 웃음을 머금다가 이내 마음이 잔잔히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시는 새로 낸 책을 들고 온 아들과 그것을 받아 든 어머니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화는 경상도 내륙 지방의 투박한 사투리 그대로 소박하고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욕심내지 말거라' 하셨다가, 이내 '그래도 돈 번다니 욕심내거라' 하시고, 다시 '마음 다친다, 욕심내지 말거라'로 돌아옵니다. 제목 그대로라면, 어쩌면 줏대 없는 말의 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흔들림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것이 단순한 우유부단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의 말은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중심을 향해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은 다름 아닌 자식을 향한 마음입니다.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에는 세상 속에서 마음이 거칠어질까 염려하는 뜻이 담겨 있고, 욕심을 내라는 말에는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들게 살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두 가지를 동시에 놓지 못하십니다.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말들은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진동처럼 느껴집니다.
이 시를 읽으면, 선거철이 다가오는 요즘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획된' 출판기념회 소식이 함께 떠오릅니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자리이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더 큰 길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대개 현실적인 테두리 안에서 맘껏 '욕심을 내야 한다'는 논리가 당연한 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심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 속 어머니의 한마디는, 그 당연함을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라고 촉구합니다. '그카다가 마음 다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말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 욕심이 우리를 어디까지 이끌 수 있는지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대법관 13명이 집단 성명서를 발표하자, 김주대 시인은 격문 형태의 장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대법관 13인에 고함, 법 위에 시민 있다’는 제목의 이 장시(長詩)는 이번 시집에 실릴 때에는 제목도 바뀌고 마지막 부분이 어느 정도 순화(?)된 채 실렸습니다. ‘삶의 시인’답게 자신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시선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 가장 힘없고 빽없는 곳으로 향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습니다.
13인의 대법관에게 고함
- 김주대
너희들 판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될까 봐
땅 파고 농사짓는 일, 바닷바람에 살점 파먹히며 물고기 잡는 일, 공장 돌리는 일은 우리가 하였다.
너희들 고운 손 깨끗한 피부로, 더러운 손 다친 사람 생각해 달라고
영하 20도 굴뚝 꼭대기에 올라가 농성하는 일은 우리가 하였다
너희들은 판결에만 전념하라고
비린내 나는 생선은 우리가 팔고
육중한 기계음 들리는 공장 컨베이어벨트는 우리가 지켰다
너희들 월급 받아 판결 잘해 달라고
나라에 꼬박꼬박 세금 바쳤다
수백억 갈취한 파렴치범 감옥에 보내달라고
빵 한 조각 훔친 아이의 두려움
새벽에 아이를 안고 맨발로 도망 나온 엄마들의 눈물을 알아 달라고
너희들 좋은 머리 아플까 봐
너희들의 판단이 맞겠지 하며
첫 버스를 타고 출근하여 막차를 타고 퇴근하였다
우리는 농사 전문가
우리는 기계 전문가
우리는 알바 전문가
우리는 예술 전문가
우리는 장사 전문가
우리는 사무 전문가
우리는 택시 전문가
우리는 버스 전문가
우리는 서비스 전문가
우리가 판단하는 것보다
너희들이 더 잘할 것이므로
우리는 못하니까
우리는 법을 못 배웠으니까
기꺼이 많이 배운 너희들을 인정하며 너희들에게 법의 칼을 쥐여 주었다
너희들 법복 앞에 떨며
때로 꾸중도 듣고 감옥에도 가고 벌금 내며 살았다
우리는 환경미화 전문가
너희들이 버린 쓰레기가 너희들을 더럽힐까 봐
그것으로 시간을 빼앗을까 봐
너희들 눈에 띄지 않게 치우고 줍고
너희들이 화장실에서 묻혀온 더러운 발자국
법원 복도마다 소리 없이 닦고 지워 주었다
우리는 위생 전문가
너희들이 싼 똥이 너희들을 더럽힐까 봐
너희들이 싼 똥 냄새가 너희들 법전을 더럽힐까 봐
너희들 눈에 띄지 않게 수거하고
너희들이 죽어도 못 하는 일
우리가 살아서 다 해 주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라고
우리는 언 땅에 서서 두 손 호호 불며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야간 근무를 하였고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었고 과로로 죽었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살길 찾다 죽었다
절망으로도 죽고 희망으로도 죽었지만
사법권은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었다고 믿고
법은 너희들에게 맡겼다
아니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너희들과 다른 우리의 일을 해야 하니까
너희들이 결코 못 하는 일은 우리가 하고
우리가 못 하는 일은 너희들이 하라고
너희들에게 맡겼다
너희들이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하여도
우리의 노동, 예술, 사무, 아르바이트, 장사
우리의 눈물로부터
아니 우리가 낸 세금으로부터 독립하여도
언 손 불며 돈 벌어 월급 주며
우리가 고용한 법의 노동자들이었기에
믿고 고개 숙였다
따랐고 인정했고 복종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너희들은 왜?
한겨울에 우리가 떨며 그렇게 울었는데도
아이가, 엄마가, 딸이, 아들이 그렇게 죽어 가는데도
그런데 너희들은 왜?
너희들은 왜?
- 시집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걷는 사람, 2026)
앞서 읽은 시 '줏대 없는 사람'과 이 시를 나란히 읽으면, 김주대 시인이 끝내 말하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指向點)이 보다 또렷하게 드러나는 듯합니다.
한 편의 시에서는 욕심을 내지 말라 하면서도 결국은 욕심을 내라 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흔들림은 줏대 없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이 마주하는 현실과 생존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의 시에서는 그러한 삶을 실제로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땅을 일구고, 기계를 돌리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버텨 온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해 온, 말 그대로 ‘삶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묻습니다. 이토록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법을 맡은 ‘너희들’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가를. 시인의 시선은, 그 책임의 무게가 과연 공정하게 나뉘어져 있는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이들, 누구보다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자리의 사람들 역시 ‘법의 노동자’라면, 그들 또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묵직한 물음이자 호소입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시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어쩌면 단순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이 타인의 삶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김주대 시인의 시 두 편을 읽으며,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일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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