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
1996년, 58년 생이었던 처형이 돌아가실 때 남기고 간 시골의 땅(지목은 전田)이 위치한 곳입니다. 1,060평.
당시 유족들이 상의하여 부산에 살고 있던 손윗 처남에게 명의를 맡기되, 처형의 유골 뼈를 뿌린 땅이니 팔지 말고 오래 간직하자고 합의했지요. 그리고 우리 부부는 매년 4월 10일 처형의 기일이면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 그 땅에 가서 추모하는 나들이를 했습니다..
매년 갈 때마다 나무가 엄청나게 빨리 자라 처음엔 밭이었으나 어느새 산이 되어가는 모습을 놀라움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해, 처남 형님이 자꾸 땅 시세를 물어보길래 "왜 그러냐" 물었더니 돈이 필요해서 팔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시세 가격으로 제가 형님께 살테니 명의는 내 이름으로 바꿔놓으면 어떻겠나" 말했더니 "그러면 좋지" 하길래 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땅의 명의를 바꾸는 일을 곧바로 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어느 날 들려온 소식. 그 땅을 처남이 다른 사람에게 또 팔았다는 기가 막힌 슬픈 소식이었지요.
그 후, 그 땅은 우리 가족에게 잊혀진 땅이 되었고 생각만 하면 화도 나고 실망스러운 일이라 입 밖에 꺼내기도 싫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길 30년.
오늘 아침 느닷없이 집 사람이 한 마디를 던집니다.
"오늘이 언니 기일인데...."
그 말 끝에 제가 즉시 제안했지요.
"우리 그 땅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가 보자!"
그렇게 번개처럼 나섰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발길을 끊은지 20년은 더 지났으니 가는 길도 가물가물 찾을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시골이라 가까이 가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만 갖고 출발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그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아졌더군요. 몇 년 전 새롭게 개통된 서울 문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문산까지 가서, 그곳에서 연천까지 동서로 연결된 신작로가 얼마나 시원하게 뚫려 있는지 가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한번 다녀오려면 가는데 2시간 반, 오는데 3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길이었거든요. 그리고, 땅 주변도 너무 많이 변해서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확신하고 찾았지만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집들이 들어서고 시설들이 들어서는 등 20년 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모습은 너무 낯설었지요.
이곳 저곳 기웃거리자 밖에 나와서 일하는 분들이 말을 걸어오길래 자초지종 얘기를 했더니, 금새 알만한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너무도 쉽게 그 땅을 처남으로부터 구입했던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김병성. 74세. 서울에서 운수 사업을 하셨던 분인데, 아내 분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한 후 공기 좋은 전원 생활을 하려고 알아보던 중 싸게 나온 이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한 동안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을 하다가 모든 걸 정리하고 지금은 그곳에 정착해서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더구나 놀라운 것은, 아내가 이곳에 온 후 건강이 좋아져서 지금은 암과는 아무 상관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회복되었다는 기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 처형이 그 땅을 구입했던 이유는 소박한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조그만 시골 교회를 하나 세워 농촌 선교를 하는 것이 그녀의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황망히 세상을 떠났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만난 그 분은 처형의 그런 뜻을 땅을 구입할 때 처남으로부터 들었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면서, 처형의 그 뜻에 어긋나지 않게 땅을 가꾸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요.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부부였습니다.
지금은 "연천 석예원"이란 간판을 조그맣게 걸어놓고 돌 화분 제작, 패션 플루트, 다육이 등을 재배하며 누군든지 들어와서 구경하는 화원으로 꾸며놓고, 찾아오는 누구와도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공간이 되었더군요.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든지 찾아오는, 꽃이 있고, 다육이가 있고, 또 생명이 자라는 화원, 바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처형이 꿈 꾸었던 그 꿈이 사장님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동의하시는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돌아오면서 집 사람에게 우리들의 오늘 발걸음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그리고 처형의 꿈이 이루어진 의미를 더 풀어서 설명해주었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리고 오늘 함께 동행해줘서 고맙다고 거듭거듭 인사하더군요.
임진강 메기 매운탕 잘 하는 <언덕너머 매운탕> 집에서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돌아 오기 전 고려 개국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崇義殿)'에 잠시 들러 산책을 했습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숭의전에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공신 16분의 위패가 모셔진 전인데, 우리 배씨 가문의 중시조인 배현경(裵玄慶) 할아버지도 당당히 여섯번째로 모셔져 있습니다.
이래 저래 오락가락 비 내리는 날이었지만 오늘은 이렇게 긴 일기를 써야하는 날로 기억해야 할 듯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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