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봄비 / 동백꽃 - 이수복

석전碩田,제임스 2024. 4. 3. 06:46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 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현대문학>(1955.6)
- 시집 <봄비>(현대문학, 1968)

* 감상 : 이수복 시인.

1924년 4월 16일,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면 장교리 산음마을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목포 문태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전신전화국을 다니면서 독학으로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예과부에 들어가 수료하였고, 국문학과에 들어갔으나 3학년이 되기 전인 1950년 돌연 낙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과는 문리과대학 동기인 셈입니다.

국 전쟁 이후 광주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을 스승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갔는데, 미당의 추천을 받아 1954년 <문예>에 ‘동백꽃’이 추천되었고, 1955년 <현대문학>에 ‘실솔(蟋蟀)’과 ‘봄비’가 추천되어 시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무렵 조선대학교에 시간강사로 잠시 출강하기도 했으나, 정식 학사 학위를 위해 1963년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1965년 졸업하였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가 불혹인 마흔 살이었습니다. 졸업 후 광주 수피아여고, 광주제일고, 순천고, 전남고 등 광주지역에서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순천 주암고(현재 한국바둑고교)에서 재직 중 1986년 4월 9일,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 수업 도중에 순직하였습니다.

전에 단 한 권의 시집인 <봄비>(현대문학, 1969)를 발간하였고, 여러 문예지에 열심히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시집으로 묶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사후(死後), <이수복 시전집>(현대문학, 장이지, 2009)과 미발표 유고시(遺稿詩)와 소설, 산문, 평론, 첫 시집 <봄비> 영인본 등이 실린 <이수복 전집 - 봄비와 낮달>(광주문인협회, 2010)이 출간되었습니다.

1994년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공원에 그의 대표 시 ‘봄비’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졌고, 2003년에는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천 수변 공원에 [봄 비 - 한국의 ‘情緖’ ‘비애’ 詩 속에 溶解] 시비가 건립되었습니다. 현재, 그의 대표시 ‘봄비’는 중학교 3학년 국어 및 한문 교과서, 그리고 고등학교 문학 하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1956년 전라남도 문화상(문학상), 1957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맘때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꺼내 읽는 시가 바로 이수복의 ‘봄비’입니다.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로 시작되는 이 시의 첫 연은 그냥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찔끔찔끔 소개했던 이수복 시인의 시 ‘봄비’를 제대로 음미해 보려고 이렇게 다시 꺼냈습니다.

수복 시인에게 있어 시적 서정을 이끄는 존재는 무엇보다 시인의 ‘누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봄비라는 시가 그저 봄에 내리는 비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꽃이 막 필 무렵인 이즈음에 먼저 간 누님을 그리워하면서 읊은 노래이듯이, 이수복 시인을 시인이 되게 만들었던 그의 첫 번째 시였던 ‘동백꽃’에도 바로 그 누님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 개인사(個人事)로 노래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미어지는 서럽고 사랑하는 존재였던 ‘누님’과의 사별(死別)을 개인적인 슬픔으로 녹여내면서도, 보편적인 ‘임’에 대한 그리움과 한(恨)의 정서로 멋지게 승화해 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의 시 ‘봄비’가 국민 애송시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시인 서정주는 이수복 시인의 이 시를 추천하면서 ‘시인의 서정성은 김영랑 시인이 보여준 향토 언어 특유의 율동과 섬세한 감수성이 이수복에 이르러 시적 정서로 승화되었다’고 극찬하였습니다.

은 하늘에는 종달새가 지저귀고, 긴 뚝방길에 파릇파릇 돋아날 새싹들, 그리고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등이 화사한 봄날의 생명력을 묘사하는 시어(詩語)라면, 시인은 의도적으로 중간중간 대조적으로 우울한 시어(詩語)들 - ‘서러운 풀빛’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 - 을 배치시켜 아름다운 봄날 뒤에 숨겨진 ‘어떤 슬픔’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시는 표면상으로는 머지않아 연출될 화사한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누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입니다. 1연에 등장하는‘서러운 풀빛’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단순한 봄날의 정경을 묘사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첫 번째 시어입니다. 새롭게 돋아나는 봄의 풀빛이 서럽다니요. 도대체 시인의 마음에 어떤 슬픔이 있기 때문일까. 그 ‘어떤 슬픔’이 구체화 되는 것은 4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고인의 영정 앞에서 타오르는 ‘향불의 연기’에 비유함으로써, 시인이 그리워하는 임은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며, 그리하여 시인은 이맘때 봄의 아름다움이 그저 아름답고 화사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순아 누이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정(情)은, 그를 시인으로 살아가게 만든 그의 첫 시 ‘동백꽃’에 비교적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동백꽃

- 이수복

동백(冬柏)꽃은
훗시집 간 순아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
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

홍치마에 지던
하늘 비친 눈물도
가냘프고 씁쓸하던 누이의 한숨도
오늘토록 나는 몰라.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울리던 동백꽃도
나는 몰라
오늘토록 나는 몰라.

지금은 하이얀 촉루*가 된
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빨간 동백꽃.

* 촉루(髑髏) - 살이 전부 썩어 죽은 사람의 머리뼈

- <문예>(1954.3)
- 시집 <봄비>(현대문학, 1968)

‘훗시집’이 무슨 뜻인지 사전에서 찾아보니, ‘처녀가 총각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 후처나 재취로 가는 시집’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막내 남동생으로서, 누나가 훗시집으로 집을 떠났으니, 어찌 그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홍치마에 지던 / 하늘 비친 눈물도/ 가냘프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 / 오늘토록 나는 몰라’라고 시인은 에둘러 모른다고 노래하긴 했지만 그 마음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꽃이 질 때 붉은 꽃봉오리 째 떨어지고 마는 동백꽃을 보면, 이미 백골이 되어 땅속에 누워 있는 그 누님 생각에, 해마다 이맘때쯤 내리는 봄비가 더욱더 서러운 이유입니다.

‘훗시집’을 가야 했던 누나가 맡긴 아들, 그리고 형 대신 형님의 가족들과 조카들까지 부양해야 했던 터라 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의 아들 이석 시인(1960년생)은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아버지 이수복 시인을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이수복 시인은 영어를 공부하여 영어 교사로 전직하였고, 과외까지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느라 시 쓸 시간을 갖지 못해 늘 안타까와했다고 합니다. 당시, 광주 최고 엘리트였던 서중생들에게 과외를 했던 시인은 본인이 어렵게 살아서인지 평소 ‘시인으로 사는 길은 워낙 힘든 길’이라며 ‘진짜 재주가 있는 사람 이외에는 이 길로 들어서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합니다.

*

부 고향에는 어제부터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직 이곳은 비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봄비’ 내리는 날, 잠시 후 저는 청명 한식을 맞아 매년 그랬듯이 2박 3일의 일정으로 고향을 다녀오는 계획으로 출발합니다. 이번 여정은 멀리 부산까지 내려가서 한창 꽃 대궐을 이루고 있을 남녘의 봄꽃까지 눈과 가슴에 담아 돌아올 예정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