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imself went on ahead and bowed down to the ground seven times as he approached his brother. But Esau ran to meet Jacob and embraced him; he threw his arms around his neck and kissed him. And they wept."(Genesis 33:3~4)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3~4)
* 묵상 : 한 부모에서 난 형제 자매라 할지라도 그 부모가 이 세상을 모두 떠나고 나면 서로 만나는 기회도 뜸해지고 또 특별한 명분을 만들어 가족의 정을 나누지 않으면 '이웃사촌' 보다 못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평소 삶의 소소한 부분에서 정을 나누지 않으면 혈연의 명분만으로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사랑과 정이 생겨나는 게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던 야곱은 에서를 떠난 후 속이고 속는 삶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비록 성경이 그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어 마치 그가 믿음이 걸출한 인물로 알지만 실제로 현대의 인물 평가 척도로 비춰본다면 '야곱같은 인물'은 전형적인 사깃꾼이나 외곬수 자아도취형 인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야곱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 부르시고(창 35:10) 믿음의 가문의 대를 잇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구절은 평생 형 에서가 자기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한 야곱이, 형을 만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방식으로' 온갖 잔재주를 다 동원하는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하긴 그 전 날 밤에는 여차하면 자기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려고 두 아내와 온 가족을 강 저 쪽 건너로 먼저 보내고 자기만 홀로 강 이 쪽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던 그였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생각한 야곱이지만 성경의 증언은 다릅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But' 이라는 접속사입니다. 야곱과는 달리 에서는 동생 야곱에 대하여 오히려 관심도 없었고 또 아무 원한이나 보복심리 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 저의 삶 속에서 나 스스로 그 길을 훌륭하게 계획하여 잘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러나(But)'를 언제나 준비하시고 야곱같은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일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야곱처럼 살지 말게'하시고 오직 '영적 이스라엘' 답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만 살게 하옵소서.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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