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闊魚龍睡晴天鴻鴈高
波聲生鐵甲月色滿弓刀"
- 明庵公詩
(넓고 넓은 바다에 바닷고기들이 잠들고 푸른 하늘에 기러기 높이 날며/ 철갑선에 부딪혀 파도 소리 들리고 고요한 달빛은 활과 칼에 비치는구나)
지난 주말에 있었던 마을 행사에 이당 선생께서 우리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시와 글들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멋드러지게 글씨를 쓰고 또 족자까지 만들어 기증을 하는, 소위 '재능기부'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가면서, 이번에 쓴 할아버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해 주는데, 그 해석을 들으면서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장수로 활약하면서, 틈틈이 시도 짓고 또 나라 걱정도 했던 멋쟁이 장수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기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교과서에서 읽었던 유명한 장군들의 시, 가령 남이 장군의 시라든지, 이순신 장군의 시만 멋진 게 아니라, 우리 직계 할아버지의 시문은 이 보다 더 훌륭하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으니, 귀가 얇은 저의 가슴이 뛸 수 밖에 없었지요.
위에 소개한 시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명암할배가 전쟁을 하는 와중에, 달빛 휘영청 비추는 바다 위에 병기를 잔뜩 싣고 출정 준비를 마친 철갑선을 바라보며 이 시를 읊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면 당시의 상황이나 장수의 마음이 시각적 청각적으로 그대로 전해져 오는, 그야말로 근사하고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날 행사 중에, 윤호 형님은 이 작품 말고 서강할배가 쓴 시를 참석한 200여명이 귀 기울이고 있는 행사장에서 또박또박 힘 있는 목소리로 재해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나라와 국민이 처한 현실까지 연결시키면서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설파했는데, 그게 얼마나 감동이었는지요. 사실, 그 자리에 있었던 저의 아내도 감동을 받았는지 '브라보!'를 연신 외치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더군요. 마침, 뒷 자리에 앉아 있던 향천사 스님과 네팔에서 오신 외국 스님 두 분도 '이런 자랑스런 마을에서 자기들이 절을 짓고 목회 사역을 한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고백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 날 행사 내용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너무도 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었다는 말입니다.
할아버지 작품으로 근사한 네 개의 작품을 만들어 기증한 이당 선생이 큰 역할을 한 대목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뒷개에 살았던 만동 종친, 또 우리 마을의 대호 종친은 비록 후배였지만, 그 날 영현 친구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뒷풀이를 할 때 대화를 하면서, '존경하고 싶은 사람'으로 내 마음에 간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올곧은 삶의 철학을 갖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하고도 겸손하게 사양할 줄 아는 태도 등에서, 저는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행사가 일회적인 헤프닝이 아니라, 국민교육헌장에서 말한 것과 같이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는'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이번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까지는 먼 산 쳐다보던 자세였다면 이제는 한발짝 다가서서 '내가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하는 마음만 가져 준다면 철리길도 첫 걸음부터라고, 결과는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내가 아침마다 묵상하는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장대하리라'는 약속의 말씀 말입니다. - 석전(碩田)
[뉴스별곡] 성주] 성주임진전쟁 의병기림예술제, 4년의 여행 도남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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