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칼.코. 2017 송년모임

석전碩田,제임스 2017. 12. 31. 23:16

30년 지기들의 모임, <칼국수 코이노니아>. 30년 전, 연희교회 주일학교 중등부에서 같이 봉사하면서 각자 직장 근처의 맛있는 칼국수 집을 소개하고 교차 방문하면서 모인 모임이라해서 붙힌 이름, 일명 <..>   

 

2017년 마지막 토요일인 30, 한 해를 보내면서 갤러리를 순회하며 송년 모임을 하기로 하고, 부암동 쯤에서 만나 환기미술관, 청운동 도서관 등 서촌 일대를 서성이며 추억 만들기를 했습니다. 먼저, 글을 쓰기 전 황지우 시인의 시 한 편을 감상하고 시작할께요.

 

망년/ 황지우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뒤편 미루나무 숲으로   

가시에 긁히며 들어가는 저녁 해  

누가 세상에서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해 울고 있을까   

해질녘 방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는 자도 있으나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좀더 남았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동창 수첩엔, 벌써 정말로 졸업해버린 놈들이 꽤 된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진 자들이   

소싯적같이 용개치던 일로 깔깔대고 있는 것도   

아슬아슬한 요행일 터이지만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의사 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2000)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부암동 서울미술관. <사랑의 묘약>을 메인 화두로 잡고 꾸민 전시회는 그야말로 탁월한 안목으로 마련한 기획전이더군요  

 

회화는 물론, 조각, 사진, 미디어 아트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예술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신진 작가들과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만큼 수준 높은 대가들을 함께 불러 모아, 사랑의 묘약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방으로 꾸며놓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 쯤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작가 노트'에 자꾸만 시선이 가더군요  

 

물론, 그들의 산뜻한 작품 자체도 매력을 충분히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는 수작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 삽입된 영화들을 한데 모아놓은 영상실에서는, 소름끼치는 음성의 실황 음악을 감상하는 보너스 복도 누렸지요. 시간이 되시면 꼭 한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 멤버의 막내가 이제 50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는 즈음이면 같은 연배에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한 횡지우 시인의 시가 더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서촌 <이상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수성동 계곡에서 겸재 정선이 올려다 보며 벅찬 감동으로 화폭에 담았을 법한 풍경을 함께 만끽하며 만들었던 추억 만들기 시간들, 화덕 피자 애찬으로 성찬을 나누며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