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한 편의 시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과 곳'에 처하는, 그래서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한 날이길 소원해 봅니다.
<우는 시간>
- 피재현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 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신작 시집인 '우는 시간'에 실린 그의 대표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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