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우는 시간 -피재현

석전碩田,제임스 2017. 1. 21. 07:06

이른 아침, 한 편의 시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과 곳'에 처하는, 그래서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한 날이길 소원해 봅니다.

 

<우는 시간>

 

- 피재현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 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신작 시집인 '우는 시간'에 실린 그의 대표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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