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별것도 아닌 조그만 감동적인 사연을 듣거나 보거나 느끼게 되면 눈물이 먼저 반응을 보입니다. 남자 나이 쉰이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말이 맞긴 맞나 봅니다.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올해 수시모집 요강에 수능 성적도 보지 않고, 또 고등학교 성적도 보지 않고 '오직 인성'하나 만으로 뽑겠다고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이 특목고 학생을 뽑기 위해서 꼼수를 부린다고 뒷담화를 해대어 그렇지 않으니 믿어 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답니다. 그러나 올해 수시 발표에서 A군을 뽑은 사연이 기사에 실리면서 그 대학의 입시 요강은 사실로 판명되었다는, 아주 평범한 그러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면서 결국 저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A군이 속했던 학급에서 성격이 예민하다 못해 심한 우울증을 겪는 한 학생이 있었답니다. 그 학생은 적응이 쉽지 않은 탓에 갑작스런 이상행동을 하기도 해서 아무도 짝꿍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A군은 선뜻 자진해서 그 학생의 짝꿍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짝꿍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일로 이상행동을 보이면 차분히 타이르면서 안정을 시켰고, 심지어는 다른 학생들이 그런 행동을 못하도록 방어 역할도 적극적으로 해줬다는 것입니다.
1학년 때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3학년이 될때까지 계속해서 그 학생의 짝꿍을 자처했던 A군은 정작 학교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태권도 운동을 그만두고 뒤 늦게 공부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공부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모먕입니다. 그러나 인성 하나만큼은 다른 사람을 돕고, 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약자를 챙기는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A군의 모습을 보고,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이 학생부에 " 이 학생은 아무도 짝이 되려고 하지 않는 학생의 짝이 되어 준 학생"이라는 짧은 한 문장을 기록하였고, 대학은 그 고등학교 학생부의 평가를 100% 믿고 뽑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신문의 기사는 친절하게, A군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모교 고등학교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대학이 그 학생의 진가를 알아 본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A군을 헬렌 켈러를 헨렌 켈러 되게 했던 '셜리반' 선생에 비유하면서 한껏 추켜올려 주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생명의 전화 해오름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E. Fromm을 다시 읽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프롬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로 대중성있게 전파하는 걸 주력하였는데,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는 현대 사회가 더 움켜 잡으려고 욕망과 욕심에 휘둘리는 병든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런 삶의 방식을 '소유의 방식'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에서부터 '존재의 방식'으로 나오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대파국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신조를 이렇게 간단한 문장으로 밝히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의 거의 대부분의 사회는 다수자를 이용하여 한 소수자의 목적에 봉사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회의 힘이 다수자를 쓰러뜨리고 협박하기 위해, 다수자가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그 때문에 간접적으로는 사회 자체의 힘이 약화되었다. 그래서 사회는 인간성이나 모든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보편적 기준과 항상 충돌해왔다. 그러므로 사회의 목표가 인간성이 갖는 목표와 똑같아졌을 때에 비로서 사회는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악을 조장하기를 중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80년, 80세의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그가 평생을 추구했던 본질적인 삶에 대한 동경은 곧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꿈이며 기대이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그 전 날 소그룹에서 함께 활발하게 논의했던 프롬의 본질적인 삶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개인 개인의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차에 어찌보면 아주 평범한 기사가 그렇게도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사회의 질(質)이 높아지는 것은 세월이 가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속해 있는 나를 포함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는 자세로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살아낼 때에야 가능하다는 것 말입니다.
그 A라는 학생이 그랬고, 또 그 학생을 눈여겨 본 담임이 그랬으며, 또 성적으로만 학생을 뽑는 것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정상적으로 하는 게 뭔지를 고민했던 대학의 자세가 바로,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모습이어서 감동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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