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두 분 형님을 모시고 고향 마을, 경북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 <자리섬>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약 한 달 전쯤에 서울에서 마흔 두 살이나 된 막내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상경한 마을 아재의 혼사에 참석했다가 두 부부의 투병 소식을 듣게 된 형님께서, 시간을 내서 고향 마을을 찾아 병문안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왔을 때만해도 나는 평일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는 답변으로 애써 내 일이 아니라고 밀쳐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후 하루 하루 기도 중에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결국, 평일 하루 연가를 내서 형님들과 동행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자리섬 동네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재두 아재는 지난 3월부터 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 혈액투석을 하면서 투병하고 계셨고, 그 아지매는 작년에 유방암이 발견되었지만 치료비가 없어 차일 피일 미루다 치료할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 이제는 거동조차 할 수 없이 집에서 누워만 계셨습니다. 두 손을 꼭 잡고 간절히 기도해드리면서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부가 살아가며서, 한 쪽이 아프면 다른 한 쪽이 간호하면서 돌보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인데, 이 부부는 두 사람이 동시에 아프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형편이었습니다. 누워만 계신 아지매의 침대 머리맡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항상 택호만 불러 한번도 불러 드리지 못했던 '여외선'이라는 이쁜 이름을 처음 부르면서 매일 기도해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안치환의 <오늘이 좋다>는 노래의 가삿말, "우리 살아있는 동안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내 친구야"라는 표현처럼, 이렇게 먼 길을 일부러 찾아와 꼼짝없이 병마에 사로잡혀 있는 아지매 아재를 찾아보는 '오늘'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던지요.
가을 걷이로 한창 바쁜 시골 마을은 풍성함 그 자체였습니다. 콤바인 기계로 추수 해 온 벼를 넓은 마당 곳곳에 말리느라 벌여놓은 곡식들이 풍성한 마을은 새 떼들마저도 즐겁게 포식하고 있는 계절이었습니다. 집집마다 한 그루 두 그루씩 서 있는 감나무에는 빨갛게 익은 감들이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듯, 청사초롱 전등을 켜놓고 시위를 하는 듯 했고 동구밖 논에는 황금물결을 이룬 벼들이 가득 가득 넘쳐나는,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즈음이었습니다.
옛날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지심 아지매가 차려 준 두 끼 식사는 그야말로 푸짐한 진수성찬이었지요. 유년 시절 논 두렁에서 큰 댓병에 잡아 온 메뚜기를 반찬으로 먹었던 추억은,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대접 받은 상에는 그 메뚜기 요리가 등장했습니다. 물론 고소함과 짭짜롬한 그 맛은 예전 그대로였으니, 감개 무량했지요.
불알 친구 영현이가 몇 년 전 근사하게 지어 놓은 2층 테라스 숙소에서 40여년을 교편을 잡고 마지막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하신 재석 아재와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 그리고 비좁지만 벽난로를 피워놓고 함께 하룻밤을 보낸 시간은 앞으로는 쉽게 갖기 어려운 또 하나의 좋은 추억 만들기였습니다.
이틑 날, 자욱하게 내린 서리를 밟으며, 왕밭골을 지나 수름재를 넘어 배설 할아버지 묘소에 가서 경의를 표하고 돌아오는 산책 길에서의 오손 도손 대화 들, 그리고 우리가 살던 옛 집을 방문해서 지금의 주인인 재금 아재 내외분과 작은 방에 둘러 앉아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면서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재석 아재 집 마당에 서 있는 키 큰 감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홍시를 긴 쪽대로 따면서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었던 시간들은 앞으로 두고 두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명량>일로 인해, 사건의 중심에서 동분 서주하고 계신 윤호 형님을 만난 일은, 이번 1박 2일 여행에서 백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심 아지매와 고타이 아지매도 동행한 윤호 형집 방문은 예상외로 참 많은 걸 깨닫게 했고 또 가슴 허뭇한 대화들이 오고 갔습니다.
사실(史實)을 왜곡하여 조상에 대한 무례함은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큰 정신적인 피햬를 입힌 사람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지만, 본래의 모습은 화합과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까지 내다보면서,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구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맑은 영성을 추구하는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문중'이 어떤 일에 힘써야 할 것인지에 대한 탁월한 생각을 이미 먼저 생각하고 계획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형을 보면서 변혁자로서의 '작은 예수'를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그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배설 장군 평전 <서암 장군 이야기> 출판과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모토 아래,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제대로 된 <요양병원을 하나 건립하는 일> 등의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될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기도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끼리 살아가게 되면서, 형제이지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지 조차도 간과하면서 바쁘게 살아온 우리들이 오래간만에 한 공간에서 1박 2일을 지내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은 참으로 행복한 나들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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