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2013.6.27 설악산 공룡능선

석전碩田,제임스 2013. 6. 29. 10:28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후기를 어떻게 정리할까 참 많이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첫 경험의 짜릿함을 그저 밋밋하게 소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악산을 다녀온 후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된다는 절박감과 위기 의식이 몰려 오면서, 그저 담담하게 물 흐르듯이 산행을 하면서 마음이 내키는대로 멋진 풍경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들던 그 마음으로 정리하면 되겠다는 겸허한 마음이 들면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소개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설악산은 여러번 왔고 또 산행도 했지만 제대로 된 산행은 한번도 하지 못한 이유를 곰곰히 되짚어 봤습니다. 그것은, 산행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 위에서 1박을 해야 하는 큰 산이어서 성수 주일을 해야하는 기독도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627..천금같은 개교기념일 공휴일, 남들이 모두 일하는 평일에 쉬는 절호의 찬스를 어떻게 사용할까를 고민하다가 설악산 공룡능선을 하룻만에 주파해 보자는 마음을 먹은 건, 어쩌면 행운이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동료 중 한 분이 기꺼이 나를 위해서 동행해주기로 귀한 약속을 했기 때문이지요. 아니 약속 뿐 아니라 자신의 일정까지도 산행 일정에 맞춰서 모든 걸 맞춰주는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에 공룡 능선을 한번 뛰어 보자는 두 사람의 의기 투합이 이루어졌고, 다음과 같은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626일 저녁 퇴근과 동시에 서울 출발(자가 운전)  

설악동 호텔에 1박 예약  

627일 가능하면 시원한 새벽 시간에 가파른 비선대, 금강굴 오름길을 주파하여 마등령에 접근하기 위해 이른 새벽 기상하여 출발 준비  

10 시간의 산행 후 하산하면 저녁 식사 후 서울로 귀환  

 

만만치 않은 산행인지, 나를 인도해주기로 한 동료는 며칠 전부터 세심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울트라 마라톤을 즐기는 동료 답게, 산행을 위해서도 미리 식이요법까지 해야 한다면서 매일 찾아와서 코치를 해주기까지 하는 준비하는 모습이 비장함을 더해 주었지요. 그런 동료와는 달리, 솔직히 말해 저는 매주 토요일 3,4시간씩 산을 오르는 북한산 산행의 2~3배 정도를 더 걸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떠나기 바로 당일까지도, 체력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이곳 저곳 권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섭외를 했으니까요. 결국 평소 함께 산행을 몇 번 하면서 친해진, 같은 학번 동기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물론 이 친구의 동의를 얻어내기 전까지 몇 명을 더 시도했지만, 비장한 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의 반대로 합류를 시키지 못하기도 했는데 이는 체력이 준비된 사람이 아니면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는 동료의 단호함 때문이었습니다.  

 

3..이렇게 해서 우리는 새벽 520, 호텔을 출발하여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에 파킹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밝아져 오는 설악의 산세를 바라보며 힘찬 첫 걸음을 내디딥니다. 높이 올려다 보이는 권금성 봉우리가 떠오른 일출 빛을 받아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군데 군데 구름은 높게 떠 있지만 화려한 설악의 산세는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화창했습니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 금강굴 장군바위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동안 외설악을 올 때마다 왔던 길이라 익숙하기까지 해서 마치 아침 산책을 나온 듯안 마음으로 걷습니다. 맑은 새벽 공기가 상쾌하게 폐 깊숙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계곡에 넓다랗게 멍석을 펴 놓은 듯한 너럭바위 비선대 다리를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으로 가면 양폭 산장을 거쳐 희운각 대피소로 가는 천불동 계곡 코스이고, 오른쪽 길은 금강굴로 곧바로 치고 올라가 마등령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일행은 계획대로 오른쪽의 가파른 계단 길을 택합니다. 금강굴까지는 지난 2, 신입생 수련회 때에도 몇몇 동료들과 올랐던 기억이 있는 곳이라 힘들지 않게 올랐지만, 그곳에서부터 더 올라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가파르고 힘듭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 보면 멀리 천불동 계곡 쪽으로 쭉쭉 뻗어 오른 기암괴석의 열병이 마치 우리를 부르는 듯이 아침 햇살에 응답하면서 힘차게 응원을 보내면서 손짓합니다.

   

비선대..새벽녘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몰려오는 구름 때문에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엶게 덮히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때묻은 속세의 사람들에게 설악의 자태를 쉽사리 드러내기 싫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秘仙臺인가 봅니다.


삽시간에 구름이 덮히기 시작한 설악은 마등령이 점점 가까워 올수록 더 심해집니다.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구름 속에 갇힌 신세가 되어 깎아지른 절벽과 웅장한 산세는 금세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멋진 설악산의 산세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우리를 인도한 동료의 간절한 마음이자, 우리의 마음이었지만 산은 첫 산행자들에게는 쉽게 열어보여 주지 않았지요.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비선대에서 금강굴을 한참 오르는 중에, 나홀로 산행을 하는 젊은 여자 산행객을 만나 인사를 주고 받았던 일, 그리고 그 나홀로 산행객을 앞질러 갔지만 한 참을 뒤쳐져 따라오지 않는 낯선 산행객을 화제 삼아 안부를 걱정해 주던 세 남자의 화기애매한 구름 속 대화는 그칠 줄을 몰랐지요. 신선이 된 듯한 안개 속 산행 길은 주위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서로를 돌아다 보게 하는 대화를 더 풍성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마등령 정상에 다다르기 전, 구름 속에 갇힌 공룡능선을 상상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금강산도 식후경>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합니다. 가야할 목표 지점, 달성해야 할 장소를 더 이상 욕심내지 말고, 이렇게 편안하게 오늘 산행을 하자고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설악의 장엄한 광경을 아쉬워하지 말고 우리들의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으면, 그것 또한 오늘 산행의 보이지 않는 목표이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냐는 대화를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합니다. 별유천지 비인간입니다.


 

 

마등령 정상..해발고도 1,320m..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등 설악산의 여러 고개 가운데 그 해발 고도가 가장 높다고 하는 마등령 정상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 놓고 지나가가는 손님을 맞이 하는 다람쥐에게 먹을 거리를 건네며 인사를 나눕니다.


 

마등령 정상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공룡능선의 웅장한 자태는 이미 짙은 구름 속에 갇혀 한치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저 바위 절벽을 더듬거리면서 돌아나갈 때 희뿌옇게 서 있는 웅장한 바위 봉우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휘몰아치는 한 줄기 바람......캄캄하게 갇혀 있던 산 봉우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구름이 휘 걷히면서 희한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면서 잠시 우리들의 환호성이 터지게 하는 순간입니다. 힘들게 한참을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구름이 걷히면서 드러난 산봉우리들은 우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 봐야 할, 하늘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은 작은 미물 밖에 되지 않는 듯...그렇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습니다. 보이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것이 바로 작품이요, 멋진 한 폭의 산수화가 됩니다. 삶의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길 동무가 있어 행복하듯이, 구름 속을 헤매다가, 금강굴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만났던 젊은 나홀로 산행객을 재회하면서 세 사람의 산행은 더욱 즐거워 집니다  

 

어디에 사는 지, 또 무엇을 하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법도 하지만, 길위에서 만난 같은 방향으로 가는 길동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신뢰하면서 끌어주기도 하고 또 기다려주기도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신선대..순식간에 우리 눈에 보여 준 설악의 멋진 모습은 마치 수줍은 새색시가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듯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또 길을 나서 범봉을 바라 볼 수 있는 신선대 뷰 포인트에 섭니다. 대청봉과 소청봉이 있는 방향 쪽에선, 발 아래 구름 속에서 심한 천둥 소리가 귀를 찢는 듯 연신 뇌성을 발합니다. 아마도 계곡 아래에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일진 광풍도 휘몰아치면서 심상치 않게 요란하더니, 또 다시 한번 엄청난 설악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하늘이 열리는 가 싶더니 드러난 대청의 모습은 마치 거인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그런 형상이었습니다.


<범봉을 바라 볼 수 있는 곳, 신선대에서 올려다 본 대청과 소청의 모습>



  

 

산행을 하다보면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삶의 길 위에서> 앞서 간 선현들이 알려 준 삶의 방향과 지침들을 알면 훨씬 쉽게 길을 갈 수 있듯, 산에서 만나는 이정표는 산행객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 그 지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그 때는 위안이기 보다는 불안과 짜증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정표나 선현들의 삶의 지침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직접 이 길을 인내를 가지고 땀 흘려 한 발 한 발 걸어내야 하는 일, 바로 그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으면서 여유를 갖고 둘러 보면 길 가의 작은 야생화, 버섯, 들꽃 한 송이도 귀하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쪽동백의 수수한 아름다운 자태>


코스 : 설악산 소공원 ~ 비선대 ~ 금강굴 ~ 마등령 ~ 마등령 삼거리 ~ 공룡능선 ~ 희운각대피소 ~ 양폭산장 ~ 천불동 계곡 ~ 비선대 ~ 설악산 소공원

 

소요시간 : 14시간  

함께한 이 : 장석용(산행대장), 홍건식, 제임스 그리고 같은 방향 산행 동료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