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공연창작집단 <뛰다> 시골마을 예술 텃밭을 다녀와서

석전碩田,제임스 2012. 8. 17. 17:14

새벽녘 잠을 깼지만 지난 밤에 꾼 꿈 하나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어느 마을을 방문했는데 그 마을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여느 연극에서나 볼 수 있는, 너무도 재미난 몸짓과 연기를 하면서 소개하는 장면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꿈을꾸면서 근사한 마당극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얼마나 흥겹고 재미있었는지, 꿈 속에서 조차 정말 재미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두 노인이 바구니에 손수 농사 지은 채소를 가득 담은 채 골목에서 만나는 장면....한 노인이 상대방 노인에게 뭔가 감사할 일이 있어 호박 한 개를 건네는데, 상대방 노인은 한 사코 거절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귀한 걸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계속되는 실랑이 몸짓이 그저 어색해만 하는 시골 마을의 어르신들의 몸짓이 아니라 익살스럽고 해학이 넘치는 전문 배우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결국 이 실랑이는 상대방 어르신이 자기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 다른 귀한 채소 하나를 주면서 이걸 받으면 나도 받겠다면서 객석을 향해서 찡끗 윙크를 하고서야 끝이 납니다.  이런 훈훈한 광경을 지켜 본, 관객인 마을 사람들이 한바탕 폭소로 박수와 환호를 치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꿈 속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들의 표정이며 몸 동작 하나 하나가 정이 흘러 넘치는 장면이요, 또 웃음이 넘쳐나는 행복한 분위기였지요.

 

이런 멋진 꿈으로 흥미진진한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지난 밤 잠 들기 전에 읽었던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소식지 '뛰움'에 실린 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001년 창단을 한 후 서울과 경기도 일원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2010년 강원도 화천 신읍리에 있는 신명 분교의 폐교 자리에 둥지를 튼 <뛰다>가 동지화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저 도시에서 온 이상한 젊은이들로 비춰지거나 마을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찍혀 미움 받지만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고, 어떻게든 동네 어르신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가 이 곳에 온 커다란 이유라고 각오를 다졌을 뿐, 무슨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 년 전 이곳으로 왔을 무렵, 우리들 대부분은 마을과의 관계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하거나 혹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마을 어르신들이 소풍을 가실 때면 약주를 챙겨드리고, 떠나는 버스 차창 밖에 서서 잘 다녀오시라고 손을 흔든다.  우리 마을 이장님은 마을 일을 우리와 의논하시고, 부녀 회장님은 배추국 끓여놓았으니 점심 때 가져다 먹으라고 문자를 보내시고, 동네 어르신들은 이번 겨울, 우리를 위해 김장김치를 십시일반 모아 주시겠노라 하셨다.  이쯤이면 제법 아름다운 관계가 아닌가.  중간에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 신읍리 동지화 마을에 안착하고 있는 듯 하다."('뛰움' 2011, 제5호)

 

그들이 이 마을에 정착하기까지 <뛰다>와 마을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요모 조모 되짚어 본 글을 읽으면서, 뛰다가 해나가고 있는 일들이 참 대견스럽고 또 침이 마르도록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을 초청하여 연극제를 꾸며 한판 축제판을 벌이는가 하면, 화천 주민들이 주인공이 된 주부 연극단 <날다>를 만들고, 또 청소년을 위한 극단 <뜀뛰기>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신경써 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모든 자연스런 흐름 위에 조카 부부가 묵묵히 그 중심에서 에너지를 보태고 있다는 사실에 대견스러움을 지나, 진한 감동마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시편의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 진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마치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 처럼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어떤 삶이 참 좋은 삶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복잡한 논리로, 오묘한 교리와 설명으로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느끼고 부대끼면서 '살아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달려가야 할 삶의 길은 아닐까...그리고 그 길이라고 느끼고 체득한 순간, 모든 걸 내 던지고 그 삶의 방향으로 직접 뛰어든 조카 부부의 용기와 지혜가 오늘따라 더욱 멋지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