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2011.8.6 인왕산

석전碩田,제임스 2011. 8. 8. 10:44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노래한 시인 발레리가 아니더라도, 인왕산 기차 바위에서 맞는 세찬 바람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비 온 뒤의 날씨 탓인지, 아니면 태풍 '무이파'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인왕산 능선길에는 바람이 세찼습니다. 그리고 발 밑으로 보이는 서울 도성이 오늘따라 어찌 그리도 다정하고 포근하게 다가오는지 팔을 쭉 뻗으면 어디든 잡힐 듯 가까워 보였습니다.

 

부암동 사무소 옆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두고, 서울시에서 정해 놓은 '걷고 싶은 주택가 길'을 따라 소설 <빈처> 현진건 옛 집터 쪽으로 걸어 올라 갑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주택가 골목길은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능소화만 지나가는 나그네를 반기는 듯 합니다. 주택가가 끝날 즈음, '대나무 숲 길'이라는 팻말이 있는 쪽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백련봉 가는 길입니다.  작은 약수터를 지나 편편한 바윗길과 짧은 소나무 숲 길을 몇 발자국 오르면 금새 능선길에 다다릅니다.  이 길을 걸을 때에는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서두르지 않아야 제 격입니다. 그저 발 아래 펼쳐지는 야트막한 주택가를 돌아 보면서 그 뒷 쪽으로 멀찌감치 서 있는 주변 산세들과 함께 바람을 맞으며 감상할 수 있으면 더욱 제 격입니다.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소나무 그늘 아래서 배낭에 넣어 온 과일이랑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그건 금상첨화이겠지요.

 

오늘따라 바람이 너무 너무 시원하게 불어 옵니다. 아마도 발레리도 이런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그렇게 노래했을 것입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쳤다 덮었다하고,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 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하나의 힘으로 다가오는 신비로움을, 온 몸으로 느낄 줄 아는, 그래서 그 힘이 곧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원천의 힘이라고 노래했던 시인처럼, 오늘 산행 길은 한 사람의 시인이 되어 걸었던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담쟁이 넝쿨이 힘차게 뻗어가는 성벽 길은 오늘 코스의 보너스라고나 할까요.

 

부암동 사무소 ~ 대나무 숲 길 ~ 기차바위 ~ 백련봉 ~ 인왕산 정상 ~ 성별 바깥 길 ~ 창의문

(산행 후에는, 시청 앞 진주회관으로 달려가  흘린 땀을 보충하기 위해서 여름 보양식 콩국수를 맛있게 먹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