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다시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유월이 오면>을 읽으면, 유년 시절 마을 뒷산에서 소먹이던 시절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6월 이만 때쯤 소를 몰고 뒷산으로 가는 길에 지나야 하는 감자밭의 감자꽃을 저는 늘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합니다. 보라색 감자꽃은 화려하지도, 또 눈에 확 띄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감자꽃을 보노라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끼곤 했지요. 아마도 그 감자꽃이 필 무렵이면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산들거리며 불어오는 찔레 향기 머금은 바람이 조화되는 때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회지에 살면서 의외로 감자꽃을 본 적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시인은 비오는 날, 피어있는 그 감자꽃에서 그리운 사람의 눈물을, 그리운 사람의 향취를 맡고 있는 듯 합니다.
시인의 눈에도 그 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 방식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속박하고 얽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고독 때문에 갈급하고 허허로운 적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런 허허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시인이 해마다 유월이 오면,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고 먼저 보낸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노래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것을 동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아니 우리가 서로 그렇게 변하여, 서로 완성된 사랑을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2010.6.12..유월의 어느 비오는 토요일, 친구의 아들을 병문안 하고 돌아와서)
*배경음악은 Bread의 IF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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