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올 해 첫 봄 꽃 - 명자꽃

석전碩田,제임스 2009. 3. 6. 18:39

 

 

오랜만에 찾아 온 반가운 친구가 들고 온 화사한 봄 꽃입니다.

갖고 올 때엔 금방이라도 터질 듯 꽃멍울만 맺혀있었는데, 하룻밤에 이렇게 활짝 피었습니다.

너무 너무 이뻐 오늘은 근무하는 중  하루종일  의자 뒤 창가에 꽂아 둔 꽃을 힐끗 힐끗 몇번을 쳐다봤습니다.

 

제 방을 방문하는 사람마다에게 매화 꽃이라고 자랑했더니, 

마침 제 방을 방문한, 실경 매화만을 그리는 동양화가 교수 한 분이,

"이건 매화 꽃이 아니고 명자 꽃"이라면서 정확한 꽃 이름을 알려줍니다.

<명자꽃>.  

그리고 <산당화>라고도 불린다고 했습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

 

명자나무는 딸들을 둔 점잖은 여염집에서는 심지 않았던 나무라고 어떤 수필에서 읽었습니다.

그 꽃이 너무 아름답고 색깔이 너무 곱기 때문에 자꾸 마음이 들썩인다는 것입니다. 이 시를 읽고 보니 더 그런 느낌이 살아납니다.

 

명자꽃 

                    (안도현)


그해 봄 우리 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린 까닭이었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그 뒷보습만 봐도 벌 받을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먼저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樂은 자리에 누워 이마로 찬 수건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나를 관통해서 아프게 한 명자꽃,

그 꽃을 산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홀연 우리 옆집 명자 누나는 혼자 서울로 떠났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쌓인 명자나무 밑동은 추했고,

봄은 느긋한 봄이었기에 지루하였습니다

나는 왜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하는가,

명자나무는 왜 다닥다닥 紅燈을 달았다가 일없이 발등에 떨어뜨리는가, 내 불평은 꽃잎 지는 소리만큼이나 소소한 것이었지마는

명자 누나의 소식은 첫 월급으로 자기 엄마한테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냈다는 풍문이 전부였습니다

해마다 내가 개근상을 받듯 명자꽃이 피어도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전에 없던 핏줄이 창궐하였습니다

명자 누나네 집의 내 키만 한 창문 틈으로 붉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自盡할 듯 뜨겁게 쏟아지다가 잦아들고

그러다가는 또 바람벽치는 소리를 섞으며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 이튿날,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고,

애비 없는 갓난애를 업고 왔었다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명자나무 가시에 뾰족하게 걸린 것을

나는 보아야 했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 몽우리를 먼저 뱉는 꽃,

그날은 눈이 퉁퉁 붓고 머리가 헝클어진 명자꽃이 그해의 첫 꽃을 피우던 날이었습니다

 

 

*배경 음악은 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