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들러리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7. 17:18

옛날에는 결혼식에 신랑과 신부의 들러리가 있었다. 신랑 신부를 돕고 또 신랑 신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 같다. 이름이 들러리지 신랑신부보다 못하지 않은 총각 처녀였다.  그래 혹 들러리끼리 사귀게 되어 결혼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고 드물게는 신랑이 신부의 들러리와 신부가 신랑의 들러리와 눈이 맞아 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그땐 들러리 없이는 결혼식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동기생끼리 합창단을 만든 적이 있었다. 후배지만 유능한 지휘자가 가르치게 되었다. 나더러도 참석하래서 친구들 만나는 재미로 나갔다. 모두들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 이었다. 기가 죽어서 어느 날 지휘자에게 “난 노래에 자신이 없어 그만두어야겠다.”고 했다. 그 지휘자 말이 “노래 못해도 뒤에서 계시는 걸로 힘이 됩니다.” 였다. 합장단에도 자리라도 채워주는 들러리가 필요하구나 싶어 계속 나갔다.

 

봄에 피는 진달래는 검은 바위와 푸른소나무 등 배경이 있어 더우 아름답다. 진달래 캐다가 화단에 심는다고 해도 산에 핀 진달래만 하지 못하다. 한아름 꺾어다 병에 꽂아도 처음 보기에 탐스러울 뿐이다. 잡초사이에 핀 꽃이 아릅답다. 잡초없는 들이나 산은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파란 하늘은 실은 먼지로 말미암아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가령 훌륭한 음악가가 있다고 하자, 훌륭한 음악가의 음악을 들어줄 평범한 사람들이 없으면 그 음악가의 그 훌륭함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미술가는 어떻고 정치가는 어떤가.

 

그들은 모두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는 잡초같은(?) 보통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세상은 뛰어나 보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고 또 그들이 바로 대접 받아야 하는 곳이다.   일에도 중요하게 보이는 일이 있고 하찮게 보이는 일이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낮은 자리에 있는 이의 일은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하찮아 보이는 일이 없이는 윗자리에 있는 이의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 존경하는 목사님이 정월 초하루에 하신 설교가 생각난다. “주부들이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 짓고, 아이 보고 하는 일이 하찮아 보이지만 역사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는 내용이었다. 따지고 보면 어떤 일이고, 누구의 일이고 하찮은 일은 없다.

 

살아가면서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고 시시한 일이 었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다. 제법 귀하게 보낸 듯 싶은 시간도 있고 허송한 듯한 시간도 있다. 하지만 시시한 일을 바탕으로 해서 큰 일을 할수 있었고, 허송한 시간은 의미있는 시간을 위한 뜸 드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작아 보이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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