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를 건너는 단 하나의 방법
몽골의 지프차 운전수 2명이 고비 여행을 앞두고 초원의 모미 앞에 잠시 서 있다.
몽골에 가기 전에는 몽골이 지구의 끝자락처럼 아득했다. 몽골에 도착해서는 이제 고비가 몽골의 끝자락처럼 아득하다. 아시아에서 아직도 탐험이나 모험을 해야 할 곳이 있다면, 몽골이 그렇다. 더더욱 고비에 가는 것은 사실 여행보다 고행에 가깝다. 고비를 건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냥 가는 것이다. 내가 탄 지프는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외곽의 ‘어버’(돌서낭)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멈춘다. 고비까지의 무사운행을 비는 몽골의 풍습이다. 바퀴로 한 바퀴 돌고 나면 두발로 또 한 바퀴를 돌며 운전수는 무사귀환을 빈다.
고비 가는 길에 만난 초원의 야생마.
이제부터 일주일간 운전수는 덜컹거리는 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여행자는 운전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고비의 길은 마치 ‘비포장길의 진수를 보여주마’ 하는 표정으로 여름 햇빛 속에 맹렬하게 누워 있다. 끝도 없고,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길. 울란바토르에서 몇 개의 고개를 넘어가면 곧바로 지루한 지평선이 펼쳐진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초원을 굴러다니는 구름. 하늘과 초원 사이로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소떼와 염소떼가 지나가며 초원과 하늘의 간극을 간신히 떠받친다.
'초원의 100차선 도로'라 불리는 몽골초원의 수십 갈래 길.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의 길에서는 바퀴가 달려간 자국이 고스란히 차선이 된다. 10차선, 20차선, 갈수록 늘어나는 차선과 갈증. 아침에 출발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작은 마을을 만난다. 10여 채의 건물과 수백마리의 양떼들이 점령한 마을. 여기서 밥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굶고 마는 정확히 끼니에 맞춰 나타난 쵸크토부 마을. 여기서 밥 먹고 출발하면 다시 저녁 때쯤에야 마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느닷없이 초원에 소나기가 흩뿌린다. 소나기 너머로 무지개가 걸려 있고, 무지개 사이로 양떼와 야생마 몇 마리가 풀을 뜯는 비현실적인 풍경. 길가에는 내내 야생 파꽃 무리가 일렁인다.
고비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하루종일 달려서 덜컹거리는 지프는 만달고비에 도착한다.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지는 곳. 여기서부터 초원이 다하고 진정한 모래의 세계가 펼쳐진다. 말이나 양떼 대신 모래벌판에는 이제 낙타가 자주 눈에 띈다. 가도가도 모래땅. 다시 하루를 꼬박 달려서야 공항이 있는 사막도시 달란자드가드에 가 닿는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사막이 펼쳐진 홍고린엘스까지는 또다시 하루를 달려야 한다.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는 얼음 계곡으로 알려진 욜링암이 있는데, 사시사철 녹지 않는 빙하가 이곳에 있다. 고비를 지척에 두고 빙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고비 인근의 욜링암. 사막을 지척에 두고 얼음계곡에 빙하가 있다.
내내 말이 없던 운전수는 초원의 언덕에 차를 세우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로 드디어 모래의 바다, 고비사막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울란바토르에서 꼬박 3일을 달려서야 고비사막에 도착한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이곳은 아직 사막이 아니라 사막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홍고린 엘스다. 때는 저녁이어서 석양 속의 사막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아침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침 햇살이 사구에 부딪쳐 고비사막은 더없이 눈부신 황금 물결을 이룬다.
초원의 한복판에서 만난 유목민의 무리.
아침이 되자 게르 한 편의 세면통에서는 눈물겨운 풍경이 연출된다. 기껏해야 2리터쯤 물이 담긴 세면통의 아랫꼭지를 누를 때마다 한방울 한방울 물방울이 떨어지고, 게르 주인인지 여행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골인은 그것을 손바닥에 받아 세수도 하고 목까지 닦는 것이다. 사실 몽골에서는 우리가 먹는 2리터 생수 한 통이면 온가족이 세수하고 남겨서 이튿날까지 세수할 분량이다. 어차피 이 세면통은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고비의 원주민은 세수하는 것조차 사치에 가깝다. 나도 세면통으로 가 현지인이 하는 모양으로 물방울을 받아 세수를 한다. 겨우 물 한 모금 정도로 세수를 마치고 나자 느닷없는 모래돌풍이 세수한 내 얼굴을 덮치고 간다. 고비의 원주민이 굳이 씻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내가 방금 경험한 것이다.
고비사막을 바라보며 서 있는 황혼 무렵의 낙타떼.
낙타를 타고 원초적 우주에 빠지다
정말로 고비고비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고비를 인생의 고비에 비유하고, 누군가는 ‘고비의 고비’를 이야기한다. 고비의 비유는 이제껏 너무 많아서 어떤 비유도 참된 고비를 수사하지 못한다. 오로지 여행자의 목적은 ‘시간의 무덤’인 저 사막에 발목을 내리고, 푹푹 빠지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기까지 가는 방법은 낙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여기서는 낙타만이 사구를 견디고, 모래땅을 건널 수 있다.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몸은 덩달아 기우뚱거린다.
사막은 이제 아침의 황금빛을 벗어버리고 흰색에 가까운 모래빛으로 바뀌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구의 곡선무늬와 물결무늬는 다가갈수록 선명하고 분명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사막이다. 난생 처음 나는 낙타의 등에서 내려 사막의 모래를 발목으로 느낀다. 한발한발 디딜 때마다 발목이 잠긴다. 이런 사막에 빠지기 위해 나는 왔다. 누군가는 고비에서 모래알만한 존재감을 안은 채 돌아가고, 누군가는 낙타의 눈에 비친 또다른 고비를 발견한다지만, 사막에서 내가 본 것은 사막의 궁륭에 뜬 낮달과 맹렬한 직사광선과 사막의 무늬를 제압하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사막의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싹을 틔운 갸륵한 새싹들이다.
낙타를 타고 사막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자들.
이 사막을 횡단하는 일은 며칠의 일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사구의 꼭대기에 올라 말없이 모래의 풍경과 모래의 시간을 본다. 고비는 그 자체로 ‘모래땅’, ‘사막’이란 뜻이다. 그러니 ‘고비사막’이란 말은 의미의 중첩일 뿐이다. 흔히 고비에서 우리가 사막이라고 부르는 모래언덕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황량한 벌판이거나 성긴 풀이 듬성듬성한 모래땅이다.
고비사막 사구 위에서 바라본 고비의 풍경.
살아 있는 동안, 다시 고비에 올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비가 아니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나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 내 앞의 광경은 나에게 마지막 풍경이다. 굳이 고비를 넘어갈 이유가 내게는 없다. 고비를 만나서 고비를 떠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던 고비에 대한 예의다. 낙타를 타고 나는 다시 사막을 빠져나간다. 그동안 사막까지 나는 3일간 달려왔고, 3일을 더 달려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것이다.
덜커덩, 황무지, 도대체, 으악!
또다시 계속되는 모래땅, 허허벌판, 황무지, 도대체, 으악, 지평선, 적막, 단조로움, 덜커덩을 견디며 나는 또 이 모래벌판을 달려야 한다. 홍고린 엘스에서 2시간을 달려가 만난 오아시스. 사하라의 오아시스처럼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벌판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다. 고작해야 그곳에는 샘이 솟는 우물이 한 채 있을 뿐이었고,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을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긴 구유통을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곳의 오아시스 우물은 사방 수십 리에 걸쳐 사는 고비의 원주민과 가축들의 생명수이다.
고비 인근 벌판에서 만난 오아시스. 이 우물이 주변의 유목민과 가축을 먹여살린다.
한 양치기가 우물물을 길어 구유에 붓자 주변에 있던 수많은 염소떼와 양떼가 몰려와 목을 축인다. 누군가는 오아시스의 샘물이 무슨 대단한 구경이냐 하겠지만, 인근의 원주민과 아이들의 상당수는 매일같이 이 우물 주변에 나와 지나가는 여행자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 너무 조악해서 그냥 준다고 해도 가져가지 않을 것들을 버젓이 그들은 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장사 수단은 조악한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불쌍한 표정에 있다. 아이들의 불쌍한 표정이 배부른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이다.
초원에 외떨어진 유목민의 게르.
가도가도 초원이고 지평선인 풍경은 지루하도록 계속된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되었을 때, 고비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게르 밖으로 나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의 물결을 구경했다. 툭하면 초원으로 떨어지는 별똥별과 지평선 위로 곧바로 뜨는 월출도. 초원의 별똥별은 내가 별똥별의 추억을 새기던 어린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세계로 나를 몰입시켰다. 지구에는 아직도 이렇게 별똥별이 수없이 쏟아지는 곳이 있고, 은하의 물결이 다 보이는 곳이 있구나, 라고 나는 막 감격했다. 원초적이고, 본질적이고, 우주적인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몽골이고, 몽골의 진면목이다.
게르에서 만난 몽골 청년이 올가(올가미)를 이용해 야생마를 낚아채고 있다.
고비를 떠나 울란바토르를 향해 갈 때, 난데없이 소나기가 퍼부어댔다. 고비로 오는 날에도 소나기를 만났는데, 가는 날에도 똑같이 소나기를 만났다. 그러나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돌풍과 함께 바람이 차서 여름인데도 날씨는 초겨울과 같았다. 내가 탄 차도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는지 연달아 두 번이나 펑크가 났다. 그런데도 운전사는 느긋하게 우리의 70년대식 펌프기를 꺼내 설렁설렁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있다. 계속되는 비와 돌풍. 바람을 넣은 차가 거의 울란바토르 인근까지 와서야 하늘은 잠잠해졌다. 익숙한 초원의 언덕을 넘어서자 불 켜진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주욱 펼쳐진다. 저녁 7시 30분. 다시 나는 울란바토르에 입성한 것이다.
유목민의 게르 내부 풍경. 이 대가족이 모두 게르에서 먹고 잔다.
<여행정보>
몽골을 여행하려면 우선 몽골 몽골 대사관(02-794-1951)에서 비자(3일 소요, 38,000원)를 받아야 한다. 인천-울란바토르 간 항공편은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이 1일 1회(여름 기준) 운항하며, 항공료는 60~75만원선(왕복, 5시간 소요). 울란바토르에서 지프차를 렌트할 경우 왕복 520달러. 기름값 별도 지불. 숙소는 울란바토르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기준 1일 5달러, 트윈 14달러, 고비 게르 숙박 15~30달러. 식사 3000~5000투그릭(3천원~5천원). 울란바토르 MK마트에서 라면, 김치 등 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다. 울란바토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용카드 사용 불가. 고비에 갈 때는 지프가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생수를 싣고 가는 것이 신상에 좋다.
* 이 기사는 2008.01.23일자 한겨레신문(http://www.hani.co.kr)에 실었던 <이용한의 몽골기행 2> 기사에서 내용과 사진을 더 첨부한 것이며, 기사의 저작권은 이용한(dall-lee)과 한겨레신문에 있습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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