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2

부부 - 문정희 / 함민복

부부 - 문정희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앵 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

내 시를 찾아가다가 - 임보

내 시를 찾아가다가 - 임보 란 내 글이 담양의 어느 떡갈비집에 크게 걸려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모처럼 고향 내려가는 길에 찾아갔더니 몰려드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느냐고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50분도 더 넘어야 한다는 대답이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이리 붐빈 걸 보면 이 집의 남다른 비결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일정에 쫓겨 그 집의 갈비 맛도 못 보고 되돌아오면서 차 속에서 생각한다 음식 맛도 음식 맛이겠지만, 어쩌면 시가 걸린 집이어서 세상의 구미를 당긴 건 아닌지― 걸린 시의 작자가 찾아왔다고 주인에게 밝혔다면 혹 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아내는 투덜거리고, 아들 녀석은 농담 삼아 무단 게시에 대한 저작권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시가 밀려나고 있는 삭막한 이 시대에 손님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