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2

환하다는 것 - 문 숙

환하다는 것      - 문숙   중심이 없는 것들은 뱀처럼 구불구불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며 길을 간다   능소화가 가죽나무를 휘감고   여름 꼭대기에서 꽃을 피웠다   잘못된 것은 없다   시작은 사랑이었으리라      한 가슴에 들러붙어 화인을 새기며   끝까지 사랑이라 속삭였을 것이다   꽃 뒤에 감춰진 죄   모든 시선은 빛나는 것에 집중된다   환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꽃을 피웠다는 말   낮과 밤을 교차시키며   지구가 도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돌고 돌아 어느 전생에서   나도 네가 되어 본 적 있다고   이생에선 너를 움켜잡고   뜨겁게 살았을 뿐이라고   한 죽음을 딛고 선   능소화의 진술이 화려하다      — 문학청춘> 2017년 여름호     * 감..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 - 김용락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    - 김용락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