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따뜻한 얼음 - 박남준

석전碩田,제임스 2020. 12. 23. 06:39

따뜻한 얼음

 

                                -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 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 시집 <적막>(창비, 2005)

 

*감상 : 박남준 시인.

1957년 8월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했으며 1984년 <시인>지에 ‘할매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한국방송공사 구성작가, 전주에서 문화센터 관장으로 지내오다 속세에서 벗어나 1991년 전업 작가로 살겠다고 선언하고 모악산에 들어갔으며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텃밭을 일구며 시를 쓰고, 한 달에 단 두 편의 원고를 써서 받는 30만 원 정도로 생활했습니다. 그나마도 생활비 15만원을 빼고 남은 돈은 모두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푸른숲, 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창비, 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문학동네, 2005), <적막>(창비, 2005),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실천문학사, 2010), <중독자>(펄북스, 2015)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쓸쓸한 날의 여행>(1993),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실천문학사, 1998), <별의 안부를 묻는다>(자음과모음, 2000), <나비가 날아간 자리>(광개토, 2001), <박남준 산방 일기>(조화로운삶, 2007), <꽃이 진다 꽃이 핀다>(삼인, 2010),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한겨레출판,2013) 등이 있습니다. 2011년 천상병 시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난 2007년 시인의 산문집인 <박남준 산방일기>가 출판되었을 때 소설가 한창훈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박남준 시인 말입니까? 그 양반, 지금은 지리산 골짜기 악양 동매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오십 넘도록 홀로 스님처럼 지내며 시와 음악과 새소리, 매화를 동거인으로 두고요, 삶은 정갈하고 성품은 깨끗하고 몸은 아담하고 버릇은 단순하고 행동거지는 품위 있고 눈매는 깊고 손속은 성실한데다가 시서에 능하고 음주는 탁월하고 가무는 빛나는 가인(佳人)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팬이 많지요. 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고 행여나, 멀리서 바라보는 이는 넘쳐날 정도입니다.

 

그 양반, 워낙 욕심이 없어요. 스스로 ‘관값’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장례비 200만원만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넘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 기부를 합니다. 또한 식탐이 없어 늘 한 두 가지 나물과 된장국이면 성찬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 떠드는 것보다는 음악 듣는 것을 택하고, 노는 것보다는 호미 들고 밭으로 가는 것을 즐기며 권태를 피해 꽃 들여다 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요?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사람한테도 쓰이는군요. 그럼 한번 가 보세요. 최소한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이라면 즉각 알아보고 직접 덖어 놓은 차 한 잔은 내놓을 겁니다. 지리산 방향 버스 타는 곳은 저쪽입니다.]

 

둔의 시인’ ‘자연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그는 2003년 9월, 12년여를 살던 모악산방을 떠나 경남 하동 악양면 지리산 자락에 있는 동매리로 거처를 옮겨 이제는 ‘지리산 시인’이란 별칭을 하나 더 얻었습니다. 한창훈의 말처럼 남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이라면 즉각 알아보는 그는 친자연적인 섬세한 언어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역설의 묘미가 돋보이는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차가움의 대명사인 ‘얼음’을 따뜻하다고 표현했으니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시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그가 하고 싶은 숨은 뜻들이 이내 드러납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차디찬 얼음 밑으로 생동하는 생명체들이 맘껏 꿈틀거리며 숨 쉴 수 있는 것은 얼음 자신의 몸으로, 옷을 껴입듯 한 겹 한 겹 품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속삭입니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아 주는 얼음, 얼음은 그 차가움으로 인해 다른 존재들이 작고 약한 것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모질지만, 그래도 견딜만 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나눠주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울먹이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러나 얼음은 끝까지 사투하면서 그들을 지켜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때가 되면 이제는 자신의 역할이 끝나야 함도 알고 있습니다. ‘햇살 아래 녹아 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 자위’는 곧 자기희생을 통해 생명을 키워내는 ‘사랑’으로 승화되고 있으니 이 어찌 따뜻한 얼음이 아니겠느냐고 시인은 목청을 높입니다.

 

리고 봄이 왔는데도 녹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얼음은 자신이 사랑하고 보호해주려 했던 것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그들이 자라고 행복하게 사는데 장애가 될 뿐입니다. 얼음은 그것을 압니다. 보호해야 할 때와 녹아 내려야 할 때. 그래서 얼음은 '맑고 반짝이는' 것입니다.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이런 얼음을 알아보고 '따뜻한 얼음'이라고 노래 불러주는 시인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칠 전,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와 눈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지난 가을부터 떨어진 낙엽을 치우지 않았던 마당을 부랴부랴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낙엽에 가려져 있던 땅에서 상사화 새싹이 벌써 뾰족이 초록 얼굴을 내밀고 있더군요. 이 한겨울을 어찌 보내려고 벌써 여린 싹을 내밀었을까. 낙엽으로 다시 덮어주긴했지만 혹시 인위적인 손길이 그들을 다치게 할까봐 못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목련 나무 가지에도 벌써 봉우리가 오동통하게 영글어 있었습니다.

 

어진 낙엽과 따뜻하게 비추는 햇살을 친구 삼아 혹한의 겨울이지만 그들은 이미 따뜻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인이 차가운 얼음을 '사랑'이라고, 그래서 그 얼음이 따뜻하다고 노래했듯이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