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그냥 대충 차 올렸습니다. 어느 팀 선수 머리에 맞든 맞겠지 하는 마음으로"

석전碩田,제임스 2013. 6. 13. 17:22

"그냥 대충 차 올렸습니다. 어느 팀 선수 머리에 맞든 맞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난 화요일 우즈베키스탄과 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상대 팀의 자책골로 천신만고 끝에 이긴 후, 자책골이 터진 센터링을 올린 우리팀 김영권 선수가 어느 방송에서 인터뷰랍시고 했던 말입니다.  

 

상대 오른쪽 진영에서 골을 잡은 이 선수는 볼을 한번 친 후에 왼발로 골문을 향해서 냅다 올렸지요. 인터뷰에서 자기가 말한대로 정확하게 우리 팀의 누가 그 지역에서 볼을 기다리고 있는지 보지 않고, 대충 올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충 올린 볼을 밀어내기 위해서 상대 수비수가 급하게 머리를 갖다 댄 것이 그만 자기편 골문으로 들어가버린 것이지요. 대한민국으로서는 천금같은 행운의 골이었습니다.  

 

저는 이 선수의 이런 표현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 방송을 타는 걸 보면서, 어쩌면 그의 말이 곧 한국 축구의 현 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치밀한 작전이나 준비, 그리고 정확한 훈련 끝에 그 날의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를 선발로 뛰게 하는 과학적인 전략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충 차는 한국 축구 수준 말입니다  

 

현대 축구는 기술과 체력, 그리고 감독의 과학적인 전략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과도 같이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 축구는 70년대 식 '대충 축구'를 하면서 그저 우연한 행운만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며칠 전 읽은 어느 신문의 컬럼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짧은 시 한 줄을 쓸때도, 식물과 꽃, 나무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알고 표현할 때 그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는 그런 내용의 컬럼이었습니다. 여러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중 소설가 문순태와 관련된 일부 내용을 소개해 봅니다.  

 

<소설가 문순태는 1970년대 소설 습작을 완성하면 서울 동대문구장 뒷편 김동리 선생 댁으로 달려갔다. 선생은 원고를 읽다가 '마을에 들어서자 이름 모를 꽃들이 반겼다'와 같은 표현이 나오면 원고를 던져 버렸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는 호통이 이어졌다. 선생은 "작가라면 당연히 꽃 이름을 물어서라도 알아야지. 끈적거리는지 메마른지 꽃잎도 만져보고, 냄내도 맡아봐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야지"라고 나무랐다. 자신도 농부들에게 이름을 물어가며 '패랭이꽃'이라는 시를 쓴 일화도 알려 주었다. 문순태는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식물도감을 샀다""그 후로는 물가 습지식물인지 물봉선이 '산꼭대기에 피어 있었다'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컬럼에서 언급된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이 선배 문인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듯이, 우리 축구 대표팀의 선수가 인터뷰에서 말한 '그냥 우리팀이든 상대팀이든 누구 머리에 맞으라는 심정으로 대충 찼다'고 하는 말이 꾸지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될 정도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볼을 차면 정확하게 어디에 떨어질 것이며, 그 곳에서 볼을 받을 우리팀의 어느 선수의 머리가 커다랗게 보일 정도의 기술과 여유, 그리고 체력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충 찼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수 있을까요?  

 

그 선수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그 인터뷰를 인터뷰랍시고 내보낸 방송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편집하지 않고 내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빈말이라도 "정확하게 우리 선수의 머리를 보고 볼을 차 올렸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방송을 보면서 오히려 제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부끄러운건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