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독후감·책·영화·논평

외국어 갈증

석전碩田,제임스 2009. 1. 16. 17:25

 

오늘 아침 조간 신문을 읽다가 동감가는 글이라 이 곳으로 옮겨와 봤습니다. 먼저 읽은 다음, 늘 새해만 되면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일어며, 영어며 공부를 시작하다가 불과 몇 주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입했던 각종 외국어 책들이 뽀얗게 먼지가 쌓이도록 내버려두는 아내를 봐 온터라, 아내에게도 이 글을 읽어 보라고 권했더니, 피 하고 웃으면서 신문을 집어 듭니다.

맞습니다. 외국어로 내 속에 있는 생각을 같이 나눌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그 외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가서 딱 1년만이라도 살면 될 것 같은 욕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해 늘 포기하고 마는 외국어 공부...저도 필자와 같은 갈증이 늘 있습니다.

 

하성란 소설가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피스 앤드 그린보트 여행 중에 장장 20여 분이 넘도록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우리말을 할 줄 모르고 나 역시도 일본어를 몰랐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하는 일에 대해 물었고 여행에 관한 감상도 짤막하지만 함께 나누었다.

승객이 600명이나 되어 저녁식사는 1, 2부로 나뉘었다.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식당 안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라도 아는 이들이 쉽게 찾도록 식당 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10명이 앉을 둥근 테이블에 앉았으니 일본인 중년 남자 셋이 합석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피스 앤드 그린 보트에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합석해서 한일 양국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도쿄를 비롯한 그 인근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아내 없이 친구 셋이 홀가분히 여행에 나섰다는 것도 알았다. 언제 적 친구들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부모 몰래 여행을 온 소년들처럼 조금 들떠 있었다.

별안간 그들 중 1명이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들었다. 달러를 접어 손에 감추고는 콧김을 바르고 주문을 걸었다. 1 달러짜리는 온데간데없고 10달러짜리가 나타났다. 이번 여행에서 쓰려고 특별히 준비한 듯했다. 이번엔 100달러짜리로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그 사이 남은 자리에 일본인 가족이 와 앉았다. 그중 사위인 듯한 남자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오전에 있었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모양이다. 그는 세 남자에게 내가 한국 작가라고 소개했다. 물론 일본말이었다. 세 남자들은 조금 당혹해 하는 듯했고 좀 전과는 다른 깍듯한 자세로 시냐, 소설이냐를 물었다. 우리의 대화는 아쉽게도 거기에서 끝났다. 그들이 나를 혼자 여행 온 중년 여성이 아닌, 이 배의 게스트인 작가라는 것을 알아버려서라기보다는 그다음에 이어질 질문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 중 누군가 어떤 소설을 쓰느냐고 물어온다 치자 내 대답은 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말로 할 때도 더듬거려지는데 하물며 외국어로야. 일본어는 내가 모르고 영어는 우리 둘 다 서툴렀다.

외국어 정말 어렵다. 일본어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배 안의 또 다른 프로그램이었던 하이쿠 모임에 갔다가 중도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키나와 출신인 일본 배우와 함께 오키나와 문제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예전과 달리 외국 작가들과 만날 기회도 점점 늘어난다. 그들과 만나 서로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면 지금의 쇼핑용 회화로는 되지 않는다. 한 작가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어놓고도 정작 그를 만났을 때는 소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회적 배경이 무엇인가, 묻고 싶었는데 사회적 배경이란 단어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 데다 겨우겨우 그 단어가 떠올랐을 때는 이미 생각해둔 어순이 뒤죽박죽된 뒤였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물리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을 할 만큼 넉넉한 사람이었다. 외국에 나간 적이 없어 여권조차 없었다고 한다. 가려운 곳을 시원스레 긁어준다 박수를 보냈는데 스웨덴에서 노벨상 기념강연을 하고 돌아온 뒤로 그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말만 영어로 한 뒤에 일본어로 강연을 했는데 다른 수상자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자신을 가리켜 한닌마에(절반 몫밖에 못하는 것)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몹쓸 꿈에서 깬 새벽, 올 한 해를 영어 마스터의 해로 삼아야 하는 걸까, 생각한다. 영어 시험지를 받아놓고 한 문제도 풀지 못하는 꿈이었다. 영어 너무 어렵다. 하성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