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래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p.s : 올해 우리 나이로 쉰이 되었습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고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나이입니다. 이는 40대 까지는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들을 아는 경지로 들어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쉰이 된 지금도 세상살이가 서툴고 허술하여 하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듯 합니다. 올해부터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따끈한 국밥같은 시 한 편 감상합니다.
'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 이외수 (0) | 2009.01.30 |
---|---|
설날 아침에 - 김종길 (0) | 2009.01.23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0) | 2009.01.09 |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0) | 2009.01.02 |
북치는 소년 - 김종삼 (0) | 2008.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