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p.s.
시인이 제시하는 이미지를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 12월의 어느 날. 눈발이 흩날리는 거리.
진눈깨비를 맞으며 어린 양을 몰고 가는 이국 소년이 그려진 아름다운 카드가
진열된 상점. 아이 하나가 진열창 안을 들여다보고 서있다.
괜히 마음만 설레게 할 뿐 ‘서양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난한 아이’에게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시의 공간이 빛날수록 역설적으로 고통스럽고 어두운
현실의 무게가 심도(深度) 있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 그의 시이다.
순도 높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은 현실과 유리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의 그늘 속에 깊게 드리운 현실의 그림자에서 오는 것이기가 쉽다.
- 정희성 시인의 글에서 -
'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0) | 2009.01.09 |
---|---|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0) | 2009.01.02 |
나무 학교 - 문정희 (0) | 2008.12.19 |
귀천(歸天) - 천상병 (0) | 2008.12.05 |
그 꽃 - 고은 (0) | 2008.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