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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석전碩田,제임스 2007. 9. 27. 17:01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내와 북한산 산행을 힘들게 한 후 내려오자 마자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을 찾았습니다.  늘 산울림 소극장의 대표극이라 이름 붙일만하게한 연극이라 지나치면서 한번은 봐야 하는데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연휴 기간 동안 꼭 봐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이지요. 

 

고도를 기다리며...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 지루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그리고 일생이 알 수 없는 뭔가를 기다리며 사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아닐까요. 어제 만난 그 사람과 또 여전히 잡담을 나누고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나누기보다 기억조차 하지 못할 그냥 그런 이야기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러다가 만났던 사람인지 아는 사람인지조차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 채 그리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말입니다.

 
'고도'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정말로 오긴 오는지조차 모르는 누구 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는 대상입니다. 그 기다림에 과연 끝은 있는가를 반문하게도 만듭니다.

 

하릴없이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의미없는 대화들....  이 연극의 희곡을 쓴 저자인 사무엘 베케트도 모른다고 했다고 하지요. "내가 그걸 알면 희곡 안에 써놓았을 거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혹자는 자유를 말하기도 하고 소망 같은 의지를 말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간에 그들은 고도만 기다립니다. 그리고 고도를 만나는 날- 어느 날엔가 끊임없이 기다리면 고도라는 놈과 해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최정점에 도달하는 거겠지요.

그들은 그때가 되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고도를 기다리느라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말입니다.  시간만 하릴없이 죽여가며 고도를 기다리는데 정작 고도라는 작자는 기억력이 전무한 소년만을 심부름시켜 자꾸만 약속을 미룹니다.

작품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기억력 감퇴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에스트라공이나 포조나 모두 바로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어쨌건 극은 전반적으로 무척 희극적이지만 무척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다음 날 갑자기 눈이 먼 소경이 되어 나타난 포조나 노예의 삶을 자청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동물 같은 럭키나 자꾸만 고도를 기다리도록 목표의식을 일깨우는 블라디미르나 멍청한 일상에서 고통을 얻는 에스트라공이나 모두 모두 그저 공포스런 존재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공포스런 존재가 아니라, 이런 삶 속에 내 던져진 우리네 인생 자체가 공포스럽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사람의 삶을 이토록 공포스럽게, 기름을 한 개도 남지 않고 쪽 빼내고 쓴 저자의 역량이 오히려 원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대목입니다.

 

*

 

밤 늦은 시간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서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 한창 공사중인, 옛 철로길 옆에 쯤에 있는 일본식 우동집(음식점 이름이 '日光'이라고 기억되는)에서 먹은 우동 국물 맛이 내내 깊은 여운으로 남습니다. 

 

註 : 제 블로그에 올려 놓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관련한 또 다른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