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몽골 홉스쿨, 그리고 <차탄족>의 생활

석전碩田,제임스 2007. 8. 23. 23:00

 ** 순록과 함께 사는 비밀로 가득한 몽고 [차탄족]의 생활환경 **



[ 차탄족 거주지가 있는 홉스굴 호수. 몽골에서 가장 신성한 호수로 손꼽는 곳이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신비로운 종족입니다. 영하 40도의 날씨
에도 순록의 등에서 아랑곳없이 잠을 자는 사람들이니까요. 순록을 타고 그들은 순록이
더 이상 가지 않는 곳까지 이동해서는 순록이 머물 때까지 그 곳에 머뭅니다. 그러다
다시 순록이 이동하는 시기가 되면, 순록이 가는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애당초 그들에게는 ‘고향’이나 ‘정착’이라는 말이 없으며, 지금도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을 오고 가며 진정한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 남은 순수한 차
탄족(Tsaatan)은 겨우 200여 명 정도(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80여 명)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차탄족을 일러 전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부족이자 믿을 수 없는
부족이며, 원시적인 인류의 원형을 간직한 부족이라고 말합니다. 아무튼 그들은 몽골계
인종 가운데서도 가장 희박하고, 가장 알 수 없는 소수민족임에는 분명합니다.




[ 오르츠 앞의 전통의상을 입은 아버지와 그냥 옷에다 과자를 먹고 있는 차탄족 아이.
차탄족 오르츠는 할흐족의 게르와는 전혀 다른 모양을 띠고 있다.]

홉스굴에서 관광용 말을 타고 지나가다 차탄족 천막인 오르츠(서양인은 이런 인디언식
천막을 티피 Tepee라 부른다)를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여긴 건, 오래 전
동화책처럼 읽었던 차탄족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기
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아메리카 인디언의 원주민일지도 모릅니다. 무속과 양육, 생김새까지도
인디언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었던 것같습니다. "

그들은 순록을 가축으로 길들여 그것을 말처럼 타고 다닐뿐만 아니라

그것의 젖을 짜 먹고, 고기도
먹고, 사냥도 합니다.”

뭐 이런 내용인 듯합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차탄족도 순록이 말보다 훨씬 온순하고, 길
들이기도 쉽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차탄’이란 말도 몽골어로 ‘순록 유목민’이
란 뜻이라는군요.




[ 차탄족 아이.]

그러나 본래 야생동물인 순록은 길이 들면 순하지만, 몇 개월만 그냥 두면 도로 야생으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어쩌면 차탄족과 순록은 닮은 점이 꽤 많은 듯합니다. 몽골 정부에
서는 지난 1960년대 소수민족 보호를 위해 차탄족을 위한 집을 지어주고 땅도 주겠다, 라
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록과 천막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가 있는데, 답답하게 한 곳에 머물러 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몽골인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할흐족이 유목민에서 점차
정착민이 되어가는 현실도 이들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던 겁니다.

차탄족이 말을 듣지 않자 몽골 정부에서는 차탄족에게 모든 사냥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평생을 유목과 사냥으로 살아온 그들의 앞날에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 차탄족 오르츠 내부. 가운데 난로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동물 가죽을 깔아놓는다.]




때문에 이들은 점차로 믿을 수 없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몽골 정부의 끊임
없는 정착 정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가고 있는 겁니다. 차탄족은 현재 몽골 최북단
홉스굴 인근에 살고 있습니다.

홉스굴 인근의 차탄족은 호수 주변의 타이가숲속이 삶의 근거지인데, 여름이면 관광객을
상대로 호숫가까지 내려와 차탄족의 전통 천막인 오르츠(게르의 원형)를 세워놓고, 장사
를 합니다.

차탄족의 전통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팔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대가로 돈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차탄족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전시용 박물관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아주 못마땅해합니다. 점점 더 세상이 순록을 타고 이동해 살기에는 어려워졌다
는 사실을 이들은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 오르츠 앞에서 차탄족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파는 아이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원시적인 유목의 삶을 보기 위해 어떤 서구의 관광객들은 수십 명씩헬
기를 빌려타고 차탄족의 거주지까지 여행을 오는 경우도 요즘엔 늘고 있다고 합니다. 차탄족
들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천막촌을 일방적으로 침략해서는 우리들 손에 돈 몇 푼 쥐어주고 갑니
다.”서구인들의 차탄족 관광은 차탄족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돈
을 벌기 위해 손을 내미는 차탄족이 이제는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기는 합니다.




[ 차탄족이 가축으로 길들여 함께 살고 함께 이동하는 순록.]

홉스굴에서 만난 차탄족은 때마침 도착했을 때, 천막 앞에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잔뜩 펼쳐
놓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천막은 할흐족의 게르와는 그 모양새부터가 다릅니다. 게르가 지
붕이 둥그런 천막이라면, 차탄족 오르츠는 우리나라의 김치움막처럼 뾰족한 원추형입니다.

몽골에서는 오르츠가 게르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막 가운데는 난로가 있고, 바닥
에는 동물 가죽을 깔아놓았는데, 천막 구석에는 젖먹이 아기가 이불에 싸여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 가족도 여기서 좀더 떨어진 침엽수숲에 살고 있으나, 관광객을
위해 잠시 내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 차탄족의 순록 무리. 한 가족이 20~50마리씩 순록을 이끌고 다닌다.]

차탄족의 삶은 아직도 모든 것을 무당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파도 무당을 찾고, 나쁜
일이 있어도 무당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산속 어딘가에 묻혀 있는 무구를 찾아내어
무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들도 무당이 될 자는 먼저 간 무당이 산속에 묻어
두고 간 무구를 찾아내는 신통력을 필수적으로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나 다른 몽골인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성황당이 있어서 숲이나 언덕의
큰 나무나 바위를 신성한 존재로 여깁니다. 이것을 몽골에서는‘어버’라고 하지만, 차탄
족은 ‘오보스'(Obos)라 부릅니다.




[ 몽골 최북단 홉스굴 인근이 차탄족이 거주(붉은색으로 표시한)하는 곳이다.]

몽골의 할흐족이 말이나 양, 소젖으로 된 우유와 치즈 등의 유제품을 만든다면, 이들은
순전히 순록의 젖으로 모든 유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순록의 가죽으로는 옷도 만들고,
천막도 만<들고, 밧줄도 꼽니다. 그러니 이들의 생활은 순록과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차탄족의 천막 주위에는 언제나 순록이 있습니다. 차탄족끼리는 얼마나 많은 순록을 가
졌느냐가 부의 척도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찾아간 차탄족은 약 20여 마리의 순록을 가축
으로 키우고 있었는데, 많을 경우 50마리 이상의 순록을 거느린 차탄족도 있다고 합니다.

본래 차탄족들은 초여름에는 순록을 풀어놓고, 늦여름에는 매어놓고 키운다고 합니다.
초여름에는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새끼만 매어놓으면 다시 새끼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지만, 젖을 떼는 늦여름에는 어미가 돌아올 이유가 없다는군요.




[ 홉스굴 호숫가로 야크떼가 지나가고 있다.]

지금도 홉스굴 인근의 차탄족은 순록과 함께 여름이면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고, 겨울
이면 좀더 남쪽으로 내려와 생활하는 오랜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옛날과
달라진 것이라면 그들의 행동 반경이 정치적 목적과 환경적 제약에 의해 제한받고 있
다는 것입니다.

사냥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목과 사냥을 동시에 하면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부족에서 이제는 유목만을 하며 제한적으로 이동하는 부족이 된 것
입니다.

현재 이들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겨우 200여 명에 불과한 소수민족의 핏줄이 언
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
앞으로 몽골을 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홉스쿨과 바이칼 호수를 꼭 방문할 것입니다.

몽골 반점을 가진 우리 한 민족의 시원(始源)으로 간주되는 이곳에서 삶의 원형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제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