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뿌리개 꼭지처럼 - 이정록 물뿌리개 파란 통에 한가득 물을 받으며 생각한다 이렇듯 묵직해져야겠다고 좀 흘러넘쳐도 좋겠다고 지친 꽃나무에 흠뻑 물을 주며 마음먹는다 시나브로 가벼워져야겠다고 텅 비어도 괜찮겠다고 물뿌리개 젖은 통에 다시금 물을 받으며 끄덕인다 물뿌리개 꼭지처럼 고개 숙여 인사해야겠다고 하지만 한겨울 물뿌리개는 얼음 일가에 갇혔다 눈길 손길 걸어 잠그고 주뼛주뼛, 출렁대기만 한 까닭이다 얼음덩이 웅크린 채 어금니 목탁이나 두드리리라 꼭지에 끼인 얼음 뼈, 가장 늦게 녹으리라 - 시집, (창비, 2016) * 감상 :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 에서 출생,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농부일기’가 당선되었고, 1993년에는 동아일보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