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 날,
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제끼고 느지감치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집을 나설 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뭔가가
쏟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신발장 우산 꽂이를 열어봤지만 공교롭게도 오늘따라 우산이 하나도 없더군요.
식구들이 비가 올 때마다
하나씩 들고 나갔다가, 비가 그치면 깜빡 잊고 오다보니 그 많던 우산들이 요긴하게 써야 할 때 없는 것이지요.
아침부터 비야
오겠냐는 마음으로 나섰지만, 전철역이 얼마 남지 않은 부근까지 왔을 때, 급기야 진눈개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 출근 길 발걸음이
비를 피하기 위해서 바빠지기 시작했고, 저도 부근에 있는 24시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지요.
눈에 띄는 긴 우산을 집어들고 얼마냐고
물었더니, "9천 5백원입니다, 근데 목소리가 참 멋있으시네요"라는 점원 아가씨가 상냥하게 인사하더군요.
이렇게, 오늘 아침 출근
길은 우산을 펼쳐들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 소리를 들으면서 '이 비가 첫 눈으로 내렸으면 좋았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얘기도 듣고 말입니다. ^&^
아마도 이 비가 삼각산 위에는 하얀 눈으로 덮혀 내렸을
겁니다.
오늘 아침에 배달된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실린 오광수 시인의 시를 함께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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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빨간색 머플러로 따스함을 두르고
노란색 털장갑엔 두근거림을
쥐고서
아직도 가을 색이 남아있는 작은 공원이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갈께
네가 오면 앉을 벤치에 하나하나 쌓이는
눈들은
파란 우산 위에다 불러모으고
발자국 두길 쭉 내면서 쉽게 찾아오게 할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온
세상이 우리 둘만의 세계가 되어
나의 소중한 고백이 하얀 입김에 예쁘게 싸여
분홍빛 너의 가슴에선 감동의 물결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두 눈 속에
소망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내 모습이 자리하면
우리들의 약속은 소복소복 쌓이는
사랑일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오광수의 시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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