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빈집 / 그 집 앞 - 기형도

석전碩田,제임스 2025. 9. 10. 06:00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시집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 감상 : 기형도 시인. 1960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하며 요절 시인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遺稿)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1989) 은 한국 현대 시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시 속에는 죽음, 고독, 상실, 공허가 짙게 배어 있으며 이를 특유의 냉혹하면서도 서정적인 시어로 포착했습니다.

인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지난해 그의 시 ‘질투는 나의 힘’ 외 몇 편을 감상하면서 올렸던 블로그의 글(https://jamesbae50.tistory.com/13411851)을 참고하면 좋을 듯합니다.

늘 감상하는 ‘빈집’은 그가 남긴 대표작 중 하나로, 사랑을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개인적 상실감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실존의 허무를 응시하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짧게 살았지만, 기형도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그가 남긴 ‘빈집’의 울림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온통 단절된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삶의 절망과 상실을 끝까지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시로 쓰는 행위 자체에서 참아내는, 인간적인 깊이를 드러냅니다. 이 시를 읽는 우리는 사랑이 사라진 자리의 상실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상실감과 고독을 언어로 붙잡으려는 시인의 절실한 목소리에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시인은 별도의 연으로 떼어내어 마치 선언하듯이 외치고 있습니다. 비록 사랑은 잃었지만 나의 본분인 ‘글 쓰는 일’에선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제는 사랑 따위에 져서 나약하게 무너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쓰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선포같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상실을 견디고, 이미 절망 속의 과거 추억이지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사랑과 함께했던 과거의 시간들, 순진했던 감정들에 대한 작별 인사입니다. 이미 떠나간 시간과 감정이기에 ‘잘 있거라’라는 말은 애도의 성격을 띱니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시인은 사랑의 상실을 글로 남기려 하지만, 종이는 두려움과 고통의 증거가 될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또 말하지 못한 마음 대신 흘린 눈물은 이별의 무력감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향한 기대와 열망조차도 상실과 함께 떠나버렸습니다. ‘잘 있거라’라는 시어의 반복적인 리듬이 마치 그가 언급하고 있는 세세한 대상들과 작별을 고하는 장송곡(葬送曲)처럼 다가옵니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쓰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잃은 슬픔과 상실을 노래하기 시작했던 노래는 드디어 시인이 빈집의 문을 걸어 잠그는 행위로 마무리합니다. 길을 잃은 존재처럼, 어둠 속에서 문을 닫습니다. 세상과의 단절, 내면으로의 퇴장을 의미하는데 그곳은 사랑이 사라진 자리 텅 빈 집으로 남습니다. 이 빈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화자(話者)의 내면과 존재 자체를 상징하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형도 시인이 사랑하는 누이를 먼저 보내고 그 슬픔을 버텨내고 영원한 기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글을 쓰는 시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들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빈집’을 읽노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슬프고 텅 빈 것 같은 마음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는 시어들에 저절로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와 일종의 연작(連作)처럼 읽히는 시인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읽으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빈집’ 발표 직전 <현대 시 세계>(1989년 봄호)에 실렸던 ‘그 집 앞’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그 집 앞

-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시집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1989)

‘나 그 술집 잊으려네 /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시의 마지막 이 구절들은 ‘사랑을 잃는 과정’과 ‘좁은 공간’ 안에서 겪었던 절망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후 시인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하는 ‘빈집’의 정서적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말하자면 ‘그 집 앞’은 ‘사랑이 떠난 후에 남겨진 공간이 된 빈집’이 만들어지는 스토리텔링을 추측할 수 있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 주말 고향 선산의 벌초를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온 다음 날 새벽, 대구의 사촌 형님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매년 벌초 때마다 제일 먼저 오셔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작업 분위기를 돋우셨던 형님이 이번 벌초 땐 응급실에 가실 정도로 병세가 갑자기 악화(惡化)되는 바람에 동참하지 못해서 모두 아쉬워했는데, 이런 비보를 이렇게 빠른 시간에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두 달 전 황망히 먼저 길을 떠난 작은누나의 소식을 듣고, ‘진짜 정희가 그렇게 되었느냐?’고 몇 번을 물어보시던 형님의 황망한 그 음성이 자꾸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한참 동생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건강이 좋지 않았던 형님에게는 아마도 황망(慌忙)스러운 비보였을 것입니다. 지금쯤에는 하늘나라에서 만나 ‘왜 이리도 빨리 왔느냐’고 서로 안부를 묻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랑을 잃고 쓰는 일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했던 시인처럼, 이 가을엔 ‘읽고 쓰고 묵상하는 일’, 즉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를 실천해 볼 일입니다. 갑자기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니 가슴 한쪽에 큰 구멍이라도 난 것 같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 말입니다. - 석전(碩田)

벌초 때마다 동참하셨던 광호, 근호 두 분 사촌 형님들....5년 전 나란히 앉아 벌초 후 식사하시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