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냄새
-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 시집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신어림, 1995)
* 감상 : 박희준.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하였으며, 현재는 번역에 종사하며 건강 치유 명상법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氣) 분야, 건강 분야, 명상과 정신세계 등에 관한 저술과 번역 작업에 전념해 왔으며, 국제 레이키마스터 명단에 올라 있는 국내 유일의 레이키 마스터로 <현대생활레이키연구회>를 설립,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선의 이해를 위하여>(대원정사, 1986), <예자의 지혜>(대원사, 1992), <열자의 지혜>(대원사, 1992), <침묵도 하나의 말이며 무지도 하나의 지식이다>(대원사, 1992), <스타와 대중>(을지서적, 1993), <차한잔>(신어림, 1994), <기억력을 기르자>(해돋이, 1994), <건강 명상 이렇게 한다>(우리출판사, 1994),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신어림, 1995), <氣 건강법의 세계>(서원, 1995), <동양의학의 기원>(하남출판사, 1996), <우주는 경이로운 일로 가득 차 있다>(맑은날, 1996), <고차원 치료 능력자들의 세계>(단, 1998), <식탁위의 뉴트리슈티컬>(홍익기술출판, 2000), <레이키의 신비속으로>(건강다이제스트, 2012, 박두연 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마음의 의학>(정신세계사, 1988), <과학기술의 정신세계>(범양사, 1988), <윤회와 전생>(고려원, 1987), <선과 깨달음>(고려원, 1993),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심리학>(범양사, 1994), <氣란 무엇인가>(정신세계사, 2001), <만트라 명상의 힘> 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짧은 시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계절에 산행하면서 오르내리는 산길에서 생각나는 고은 시인의 시가 대표적입니다. ‘그 꽃’이라는 시입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 그 꽃’. 안도현 시인의 시도 생각납니다. ‘너에게 묻는다’는 제목의 시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시인 중 유치환 시인이나 정지용 시인의 짧은 시도 생각납니다. 유치환 시인의 ‘낙엽’은 이렇습니다.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호수’라는 시입니다. ‘얼굴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 싶은 마음 / 호수만 하니 / 눈감을 수밖에’. 또 광화문 글 판에 소개된 시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로 선정되었다는 정현종 시인의 ‘섬’도 생각납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또 정현종 시인의 다른 시 중에는 이런 짧은 시도 있습니다. ‘마른 나뭇잎을 본다 //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마른 나뭇잎’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떤지요. 그의 시 ‘풀꽃’이 너무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 이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습니다.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런 수많은 짧은 시들 중에서 오늘 감상하는 박희준의 ‘하늘 냄새’라는 시는 많이 인용되고 있고 또 잘 알려진 시이지만 시인과 시에 대해선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젊은 시인과 헷갈리기도 하고, 이 시를 인용하여 수필을 쓴 법정 스님의 시(詩)로 오해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감상하는 시는 전업 시인의 시라기 보다는, 명상과 동양의학 등을 통해 사람의 전인 건강과 치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선배 수도자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가는 인생의 도반(道伴)들에게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라고 응원하는 축문(祝文)과도 같은 메시지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제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고도원의 아침 편지>를 통해서 달랑 이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시를 소개하면서 고도원은 이렇게 편지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마음이 맑으면 / 눈빛부터 맑아집니다. / 표정도 맑아지고, 말씨도 달라집니다. / 냄새도 바뀝니다. 분명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것인데도 / 그 몸에서, 높고 푸른 하늘의 향내가 납니다.(2005. 12. 15 고도원의 아침편지)’.
‘하늘 냄새’ ‘하늘의 향기’, 그건 어떤 냄새이고 어떤 향기일까. 이 시에서 시인은 그 하늘 냄새가 적어도 부정적이고 고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순수, 구원, 사랑 등 절대적인 어떤 가치를 본능적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 순수한 영혼을 지향하는 청아한 눈빛, 거짓 없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늘을 닮은 모습’이고 그런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즉 ‘사람이 /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라야만 하늘 냄새가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와 향기를 갖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어떤 냄새를 내고 있는지 잊고 있거나 알지 못하고 주위에 악취를 풍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냄새를 정확히 알고 그 냄새를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추구하는 삶,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고 싶은’ ‘하늘처럼 맑아 보이는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 비록 큰 재물은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또 높은 지위나 힘 있는 권력자의 자리는 차지하지 못했을지라도, 성공한 삶이라고 시인은 조용조용 속삭이며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향기, 냄새와 관련된 시 중에서 기억에 남는 박규리 시인의 ‘천리향 사태’라는 제목의 시가 떠오릅니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고 하는 천리향의 향기, 어둠 속에서도 절대로 기죽지 않고 ‘고혹적인 아리동동한 냄새’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천리향 꽃향기를 ‘사태’라고 표현하면서 산사 수도승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는 '환장할 봄날의 정취'를 익살스럽고 재미나게 노래한 시입니다.
천리향 사태
- 박규리
글쎄 웬 아리동동한 냄새가 절집을 진동하여
차마 잠 못들고 뒤척이다가
어젯밤 산행(山行) 온 젊은 여자 둘
대체 그중 누가 나와 내 방 앞을 서성이나
젊은 사미승 참다못해 문을 여니
법당 뒤로 언뜻 검은 머리 숨는 게 아닌가
콩당콩당 뛰는 가슴 허리 춤에 잡아 내리고
살금살금 법당 뒤로 뒤꿈치 들고 접어드니
바람처럼 돌담 밑으로 스며드는 아,
참을 수 없는……내……음……오호라 거기라고,
거기서 기다린다고 이번에는
헛기침으로 짐짓 기별까지 놓았는데
이 환,장,할,봄날,밤, 버선 꽃 가지 뒤로
그예 숨어 사라지다니, 기왕 이렇게 된걸
피차 마음 다 흘린걸
밤새 동쪽 종각에서 서쪽 아래 토굴까지
남몰래 돌고 돌다가 저 아래 대밭까지 돌고 돌다가
새벽 도량석 칠 때까지 돌고 돌다가
온 산 다 깨도록 돌고 돌다가
이제 오도 가도 못해서 홀로 돌고 돌다가……
천리향, 천리향이었다니……눈물 핑 돌아서
-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작과 비평, 2004)
아마도 지금쯤 제주도에는 귤꽃과 인동초 꽃향기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 이맘때 피는 꽃으로 진한 향기를 자랑하는 치자꽃도 그냥 지나치면 아까운 향기입니다. 또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름도 그리 이쁘진 않지만 천리향이나 치자꽃, 귤꽃이나 인동초 꽃향기에 버금가는 쥐똥나무 꽃향기도 이 봄에는 꼭 한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25년 ‘이 환장할 봄날’에는, 저절로 머리 숙여지고 본받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사람 향기’가 나는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나는 행운도 누리시길 응원합니다. 아니, 나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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